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보유한 5조1,000억달러에 이르는 자금의 파수꾼인 리처드 터닐 글로벌수석투자전략가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세계 시장에 가장 즉각적인 위협으로 ‘북한’을 꼽으면서 “북핵 문제가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결과(unknown unknowns)’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뉴욕 블랙록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터닐 수석투자전략가는 그러면서도 “정치적 사건이 전반적인 시장 판도를 바꿔놓지는 않는다”며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회복에 힘입어 주식 등 위험자산이 추가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100개월에 육박하는 미국의 경기 확장 사이클도 앞으로 수년간 더 이어질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변동성이 낮아진 글로벌 시장에서 그가 지목하는 최대 리스크는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다 예상과 달리 국채금리가 급등할 수도 있다”며 “가능성은 낮지만 이는 중대한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내년 초 무렵 자산매입 축소를 발표해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 발작)’을 초래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탄탄한 모습은 아닌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 저유가 등 여러 리스크 요인이 거론되는데 하반기 세계 경제를 어떻게 보는가.
△디플레이션 우려와 단기적 측면의 정치적 리스크들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낮은 수준에 머물면서 잠잠한 상황이다. 특히 경제 전망이 개선되고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는 확장세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주식을 포함한 위험자산이 추가로 완만하게나마 더 오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아시아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전반적으로 신흥국 시장에 대해 긍정적이다. 달러 강세 우려가 가라앉은 상황인데 유동성은 개선되고 있다. 2013년 미국이 양적 완화를 중단하면서 빠져나간 자금들이 대거 돌아올 여지도 있다. 중국의 경우 공급 측면 개혁이 기업 수익성을 높이고 있으며 인도와 인도네시아도 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어 매력적이다. 기업 실적이 뒷받침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홍콩과 싱가포르 증시는 금리에 민감해서 매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단기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정치적 리스크는 줄었다고 평가했지만 북핵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히 크다는 평가도 있다.
△내년에는 멕시코 대선과 미국의 중간 선거 등이 있지만 올 하반기에 중요한 정치 이벤트는 오는 9월로 예정된 독일 총선 정도다. 독일 총선의 정치 리스크는 최근 들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단기적인 정치 리스크가 크진 않다고 본 것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가장 즉각적인 위협은 ‘북한’이 꼽힌다. 북핵 같은 문제는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결과가 생길 수 있어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다만 모든 투자자가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공평한 측면은 있다.
-그렇다면 돌발적인 이벤트성 리스크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선 지난해 브렉시트 선거 결과에서 확인했듯 정치적 사건이 전반적인 시장 판도를 바꿔놓지는 않는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브렉시트 같은 이벤트로 인한 일시적 하락장은 매수 기회로 여겨진다. 또 일반적으로 시장은 이벤트가 발생하기 두 달 전까지는 관련 리스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시장은 리스크를 인식하는 데 느린 경우가 많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장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이벤트라면 꼭 ‘헤징(위험회피)’을 권하고 싶다.
-올 초 출범한 트럼프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관철시켰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무역협정들에 중대 변화가 생기면 세계 경제에도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을 텐데.
△특정 국가 간 무역협정의 향방에 대해서는 전망하지 않는 것을 이해해달라. 더욱이 무역협상들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초창기여서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언급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 같다.
-월가에서는 차이나 리스크가 꾸준히 거론돼왔다. 중국발 위기가 금융시장을 뒤흔들 가능성은 없겠는가.
△중국 경제에 대한 단기적 우려들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중국이 점진적으로 경제성장 둔화를 용인하며 통화 긴축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향후 수년간 중국 경제의 성장세는 둔화되겠지만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 성장률이 6~6.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전의 높은 경제 성장을 고려할 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특히 공급 부문의 개혁으로 국유기업의 이익이 증가하고 있고 글로벌 무역이 회복되면서 수출도 늘고 있다. 올가을 공산당 전국대회를 앞두고 중국 경제의 꾸준한 성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중국 경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소비 위주 경제로의 전환과 막대한 국내 부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이번 달을 포함하면 98개월째 경기확장 기조를 보이고 있다. 경기확장 사이클이 충분히 길었기 때문에 조만간 그 수명이 다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블랙록이 미국의 경기 사이클을 보는 관점은 좀 다르다. 기간이 아니라 양적 측면을 봐야 할 것 같다. 경기는 개선되고 있지만 그간 회복 속도는 느렸고 여전히 ‘부진한’ 경기 확장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경기 사이클이 정점에 도달하는 데도 그만큼 더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경기 확장 측면에서 미국의 수명은 그저 몇 분기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더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증시와 채권시장의 공포지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일각에서는 “시장이 걱정을 너무 안 한다”는 걱정 어린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잠잠한 시장에 파문을 일으킬 최대 리스크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변동성의 역사는 장기간 고요함을 유지하다 어느 순간에 깨지는 것이었다. 낮은 변동성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변동성이 낮다고 시장이 무사안일에 빠져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연준이 천문학적 양적 완화 이후 지도에 없는 길을 가다 투자자들의 일반적 예상과 달리 국채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주식 가치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어 이를 가장 큰 리스크로 블랙록은 현재 보고 있다.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중대 리스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편으로는 미국 물가상승률 부진으로 인해 연준이 올 하반기 중으로 예상됐던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현재 연준의 정책 방향에서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연준은 웬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통화정책 정상화 프로세스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준이 성장에 잠깐 차질을 빚는 것보다는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둔화를 더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가라앉은 상황이어서 고용 증가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지가 연준의 관심사다. 연준이 6월에 발표한 보유자산 축소 계획도 시장의 양호한 반응을 끌어내 2차 ‘테이퍼 탠트럼’을 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자산 축소도 로드맵에 따라 연내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경제의 개선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2013년 미 연준의 ‘테이퍼 탠트럼’이 ECB로 옮겨져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ECB의 양적 완화(채권매입 프로그램)는 스스로 부과한 한계가 있어서 의도치 않은 긴축을 일찍 시행할 위험이 어느 정도 있다. ECB의 채권매입은 국가별 부채의 3분의1까지로 한도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채권매입이 감소하면 유로존에서 취약한 주변국은 경제에 적지 않은 압박을 받을 것이다.
-유럽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커지고 있지만 유망한 투자 지역을 세분화한다면 어떤가.
△우선 최근 유럽 주식에 대한 추천이 늘어난 것은 미국에 비해 주식 가치가 상당히 할인돼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독일의 경제지표가 가장 많이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고 이에 따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9월 총선에서 4번째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로존 경제회복에서 이탈리아는 예외로 정치적 혼란과 취약한 은행 시스템이 지속적인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