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기준 단기 부동자금은 1,025조원이 넘는다. 지난해 말보다 14조원 늘었는데 저금리로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처를 찾아 대기하고 있다. 부동자금은 주식시장부터 부동산까지 휘젓고 있는데 투자가치가 있는 물건들의 가격은 이들에 의해 단기간에 급등하곤 한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아파트부터 일부 재개발 단독주택지, 분양권은 물론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삼성전자 등 우량주부터 기술주 가격까지 끌어올렸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하고 규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국지적으로 상승한 것 또한 결국 풍부한 유동성의 영향이 컸다.
유휴자금의 놀이터였던 자산시장에 ‘8·2부동산대책과 세법개정안’은 충격이었다. 대주주 주식의 양도소득세 강화,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강화 조치 등이 발표되자 PB센터는 자산가들의 문의로 분주했다고 한다. 황영지 이촌동 PWM센터 PB팀장은 “내년 4월에 15억원 과세기준에 걸리는 분들 가운데 연말까지 한도를 줄이려는 고객들의 연락이 많다”며 “주식을 많이 담고 있는 경우 충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박승안 우리은행 강남PB센터장은 “부티크 형태로 주식을 크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한도와 세율이 조정되면 영향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번 대책이 자산가들에게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은 당장 움직였다. 3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68%(40.78포인트) 빠진 2,386.85로 마감했다. 코스닥도 2.19% 내린 643.09에 장을 마쳤다. 북핵 문제로 불거진 지정학적 리스크와 강도 높은 부동산·세법개정안의 영향이 컸다. 강도 높은 부동산대책과 ‘슈퍼증세’가 겹치면서 돈의 흐름이 막히고 있는 것이다. 저금리로 여유자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몰렸는데 고강도 대책에 기존 투자금은 발이 묶였고 여유자금을 가진 이들은 관망세로 돌아서고 있다. 외국인도 지금까지의 투자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8월 위기설’까지 겹쳐 진퇴 양난...부동자금 흘러갈 물꼬 터줘야
증시도 마땅찮아...예금.MMF 등 ‘대기성피난처’ 몰릴 듯
실물경제까지 위축...부동산규제.세제개편 완급조절 필요
당장 부동산시장의 자금 진출입이 모두 힘들어졌다. 2011년 말 2,952조4,245억원이었던 우리나라 주택 시가총액은 2012년 3,053조3,552억원으로 3,000조원을 넘어선 뒤 2014년 3,334조7,873억원을 거쳐 지난해 3,732조222억원까지 치솟았다. 그만큼 돈이 몰렸다는 얘기다. 이번 부동산대책으로 조정지역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폭탄’을 맞게 됐다. 돈의 흐름이 끊길 것으로 보는 이유다.
부동산대책과 세법개정안은 시장과 돈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 같은 흐름을 꺾기 위해 만들어진 ‘8·2부동산대책’은 부동산에 쏠린 자금이 묶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정부는 1가구 2주택자를 포함해 다주택자들이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 전인 내년 4월까지 집을 팔아 집값을 안정시키고 추가 투기 수요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지만 현실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자금흐름 없이 관망세를 보이다가 짓눌린 가격이 한번에 터지는 부작용을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박승안 우리은행 강남PB센터장은 “투자는 심리인데 양도소득세는 팔기 전에는 생기지 않으니까 5년 동안 부동산을 들고 있으면서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취득·등록세가 발생하지 않아 정부 세수가 줄고 실물경기도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길이 막히면 시중 자금은 이론상 주식시장으로 가게 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물론 올 들어 2일까지 개인들은 주식시장에서 344조2,640억원을 매수했다. 2014년 말 1,916이었던 코스피지수는 2015년 2,000선을 넘은 뒤 올 들어 2,400선을 돌파했다. 글로벌 저금리가 수년째 지속되면서 국내외 자금이 주식시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손들은 강화된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대상 확대와 함께 세율도 현행 20%에서 과세표준 3억원 이하 20%, 3억원 초과는 25%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8월 위기설’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외국인들의 투자세도 주춤하다. 부동산과 주식, 어느 쪽 하나 마땅한 투자처가 못 되는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도 이번 부동산대책 이후 유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은 비교적 위험이 낮고 수익이 높지만 주식은 위험 대비 수익률이 낮은 자산으로 인식된다. 투자자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돈은 잠시 단기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에 대기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영륜 KB증권 압구정지점 PB팀장은 “자금의 성격이 달라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급격히 돈이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세법개정안으로 부동산과 차별화됐던 세금 부담도 커져 오히려 직접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배당소득증대세제의 일몰 종료는 국내 증시의 저평가 원인으로 지목돼온 낮은 배당성향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거꾸로 주식시장에 돈이 몰릴 가능성은 더 작아진다. 염동찬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수준으로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배당성향이 가장 낮은 국가”라며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배당을 늘리려는 유인은 감소하고 법인세는 증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과거에도 그랬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노무현 정부 때도 종합부동산세 같은 강력한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꺾이고 주식시장이 반사이익을 보지는 않았다”며 “자금은 증시로 오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부동화되거나 해외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돈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업 쪽으로 자금을 흘려보낼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을 넘어 부동산은 물론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들어갈 수 있도록 단계적 조치를 취해야 자산시장의 부작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다. 기업공개(IPO)시장 활성화와 각종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 확대가 대안으로 꼽힌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부동산에 쏠리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보겠지만 순진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박민주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