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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톡] “고급 막장→입소문 정주행”…‘품위녀’, ‘도봉순’ 넘어설 이유

JTBC가 일을 냈다. 아니, 백미경 작가가 일을 쳤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올해 초 그가 집필한 ‘힘쎈여자 도봉순’이 종편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데 이어 차기작 ‘품위있는 그녀’가 6개월 만에 기록을 갈아치울 모양새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자체 최고 기록을 뛰어넘는 데까지 불과 소수점 정도의 차이만이 남아있다.

‘품위있는 그녀’는 요동치는 욕망의 군상들 가운데 마주한 두 여인의 엇갈린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김희선은 뛰어난 미모를 가진 준재벌가 며느리 우아진 역을, 김선아는 우아진을 동경해 상류 사회로 편입하고자 하는 박복자 역을 맡았다. 휘몰아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초반 2%대였던 시청률은 14회 만에 9%를 돌파했다.


이쯤 되니, 오히려 초반의 낮은 시청률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김희선의 복귀작이자 ‘힘쎈여자 도봉순’ 작가의 극본임에도 2%로 출발했다는 것은 사실 드라마에 대한 사전 기대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다만, ‘힘쎈여자 도봉순’과 비교할 때 주연들의 연령층이 높고 다루는 소재가 다소 막장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큰 이유를 차지할 것이다.

/사진=서경스타DB/사진=서경스타DB


#이토록 품위 있는 막장

그렇다. 얼핏 보면 막장 드라마다. 누군가는 얼핏 보지 않고 꼼꼼하게 뜯어봐도 막장은 막장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현실이 더 막장이라고. 실제로 ‘품위있는 그녀’에 등장하는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 사건은 뉴스에서 접했던 사건을 떠오르게 만든다. 2015년 영풍제지 이야기와 흡사하다.

극 중 우아진이 겪은 불륜이야 현실에서는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일이 돼버렸다. 남편의 가정 폭력과 CCTV 고발 또한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이다. 드라마 속 상류층의 추잡한 이면을 막장이라고 비난하기에는 이미 우리 현실이 더 막장이다. 이렇게 되니 차라리 가상 인물을 창조해 낸 드라마가 고고해 보일 정도다.

백미경 작가는 막장으로써 인생을 통찰했다. 드라마 전반에 깔리는 박복자의 내레이션이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지난 회에서는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주제로 인물의 관계와 상황을 풀어냈다. 박복자의 “돈만 있지 밑바닥 것들이랑 똑같네”라는 상류층에 대한 환멸은 현실의 부유층에 일침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다. 막장 소재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작가가 극본을 잘 써놓으면 그 다음은 연출가의 몫이다. 김윤철 PD는 앞서 자신했던 것처럼 막장 연속극처럼 보이지 않도록 디테일에 힘썼다. 박복자가 죽는 장면을 1회에 배치해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했다. 상투적이지 않은 전개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상류층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세트부터 배우들의 의상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사진=제이에스픽쳐스, 드라마하우스/사진=제이에스픽쳐스, 드라마하우스


#김희선X김선아, 제대로 보여준 여성파워


품위있는 막장. 그 아이러니함을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 김희선과 김선아다. 배우의 연기력은 잠시 접어두고, 캐릭터만 살펴봐도 걸크러시가 넘친다. 우아진은 남편 안재석(정상훈 분)의 외도 사실을 알고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그야말로 ‘사이다 행보’를 보여줬다. 시아버지의 설득에도 재벌 사모님이 아닌 나의 길을 가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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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다. 내연녀 윤성희(이태임 분)를 ‘첩’이라고 부른다. 드라마 시작 전, 이태임 역할에서 첩이라는 설명을 보고 2017년에 이게 웬 말인가 했는데 이토록 통쾌한 호칭이 될 줄이야. 남편이 바람을 폈는데도 본인이 죄인인 것처럼 주눅 들던 아내들만 보다가 말싸움, 기싸움에서 절대지지 않는 우아진을 만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완벽한 대리만족이다.

박복자는 또 어떤가. 재산을 노리고 위장취업을 한데다 그렇게 넘겨받은 회사 지분을 모조리 팔아치울 계획까지 세우니 사실상 악역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역할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드라마 초반 주눅 든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던 박복자가 대성펄프 박지영 부회장이 되는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우아진과 박복자의 존재감은 단연 김희선과 김선아의 연기력에서 비롯됐다. ‘품위있는 그녀’는 발연기 청정 구역이다.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의 열연은 더욱 눈에 띈다. 김희선과 김선아는 없고 오로지 우아진과 박복자만 있을 뿐이다. 김희선은 우아진 특유의 차분함 속 카리스마를, 김선아는 박복자의 열등감에 더해진 환멸을 세심하게 표현해냈다.

/사진=제이에스픽쳐스, 드라마하우스/사진=제이에스픽쳐스, 드라마하우스


#본격, 시청자가 영업하는 드라마

이러니 입소문을 안 탈 수가 없다. ‘품위있는 그녀’는 유독 주변 사람들 추천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시청자가 많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초반 2%대의 시청률이 9%까지 오르는 것은 제작사와 배우들의 홍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드라마를 본 사람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열변을 토하면서 영업해야만 또 다른 시청자를 끌어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시청자의 중간유입이 용이해야 한다. 최근 종영한 tvN ‘비밀의 숲’과 비교해보자. ‘비밀의 숲’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품위있는 그녀’와 다른 점이 있다. 소재의 전문성이다. ‘품위있는 그녀’는 법조계나 의료계 등 전문적인 이야기가 아닌 통속적 서사를 펼쳐냈다. 특별한 이해력이 필요치 않은 것. 채널을 돌리다 7회부터 보더라도 금세 이해가 된다.

한 가지 더, ‘품위있는 그녀’는 100% 사전제작 드라마다. 주로 겨울 촬영을 해서 극 중 인물들의 의상은 지금 계절과 맞지 않게 매우 두껍다. 오히려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드라마 속 스타일링을 즐기기에는 가을-겨울 복장이 제격이다. 김희선과 김선아의 늙지 않는 미모와 훤칠한 기럭지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연히 몇 장면 보다가 1회부터 최근 회까지 정주행 했다는 후기는 지금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 같은 반응은 시청률로 증명됐다. ‘품위있는 그녀’는 4주 만에 5%대, 5주에 6%대, 6주에는 8%대를 기록하더니 7주차인 직전 방송에서 9.131%(닐슨코리아 전국유료가구)를 기록했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최고 기록은 9.668%. 불과 0.537%P 차이다.

지난 방송에서 우아진과 안재석은 재판 끝에 이혼했다. 박복자는 모든 지분을 넘겨받았다. 동시에 첫째 며느리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종영까지 3주 남은 시점에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우아진의 홀로서기와 박복자의 최후만 남은 상황. 당연히 ‘본방사수’를 노리는 시청자도 많다. 이번 주말, ‘품위있는 그녀’가 종편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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