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섭렵한다는 것은 평생 걸려도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휴가 같은 모처럼의 여유가 생길 때면 벼르듯 고전을 꺼내 들게 된다. 국가의 흥망성쇠 속에서 보편적 교훈을 캐내고, 영웅과 위인들의 삶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에 이미 읽었더라도 또다시 곱씹어 읽게 되곤 한다. 서경 펠로들 역시 사마천의 ‘사기’, 나관중의 ‘삼국지’ 등 수백 년 스테디셀러를 잊지 않고 챙겼다.
한(漢)나라 멸망 후 펼쳐지는 무수한 영웅호걸들의 쟁투와 죽음·전쟁·음모와 지략을 펼쳐낸 ‘삼국지’는 14세기 통속문학가 나관중이 쓴 소설이지만 영웅의 일대기와 그 속에 밴 민중의 열망 등은 역사서 이상의 흡인력을 갖는다. 국내에서는 이문열이 번역해 민음사가 1988년 초판을 선보인 ‘삼국지’와 2003년 황석영이 내놓은 창작과비평사의 ‘삼국지’가 양대산맥을 이룬다. 곽결호 전 환경부 장관은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당국의 경제적 보복조치가 드세니, 대국다운 모습이 아니다”라고 꼬집으며 “광대무변한 대륙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는 천하의 지배를 두고 보노라면 올 여름, 오늘의 중국이라고 다를 바가 있겠는가를 생각하게 된다”며 삼국지를 추천했다.
진시황이 중국 영토를 통일했다면 사마천은 관념적 ‘통일 중국’을 처음 만들었다 할 정도로 사마천의 ‘사기’가 지닌 영향력은 지대하다. 총 130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시간적으로는 상고(上古)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 공간적으로는 옛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이민족의 역사까지 아우른다. 2011년 ‘사기’(민음사 펴냄) 전권을 완역한 중문학자 김원중은 전체 맥락에서 본 용어의 미묘한 차이들을 찾아냈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최근 한글로 완역된 사기는 동양 고전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세가, 열전 등에 녹아있는 각 인물들의 세계관과 그들의 판단이 변화시킨 운명과 흥망성쇠는 자신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일독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9세기 영국의 사회학자 존 러스킨의 근대 고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아인북스 펴냄)를 함께 권했다. 러스킨이 주장한 생명의 경제학, 천국의 경제학, 인간의 경제학이 알차게 담긴 책이다. 특히 물질문명의 풍요로움에 가려진 노동자와 실직, 인간에 의해 망가진 자연을 위한 생명의 경제학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최근 실리콘 벨리를 중심으로 알파기업이 아닌 베타기업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베타 기업이 내는 높은 성과의 근원은 인간관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출발하는데 이런 인간관에 대해 잘 설명된 책이다”라는 이 대표의 추천사가 제격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더 나은 삶을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일찍이 알아차렸고 그에 대한 인생 해답서 격으로 ‘도덕감정론’을 집필했다. 그로부터 250년 뒤 러셀 로버츠 스탠포드대 교수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세계사 펴냄·원제 How Adam Smith Can Change your Life)을 통해 고전 ‘도덕감정론’의 핵심을 현대에 맞춰 풀어썼다. 부, 행복, 이기심, 이타심, 정의, 관계 등 개인과 사회를 만드는 요소들의 본질과 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애덤 스미스의 가르침이 오롯이 담겼다. 정경택 김앤장 대표변호사는 “내 안에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 기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고 타인과 교류하면서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 준다”라며 이 책을 권했다.
고(故)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교수가 ‘고전 강독’이라는 강좌명으로 진행했던 강의 내용을 정리한 ‘나의 동양고전 독법’은 주역부터 공자,맹자,노자,장자 등의 고전 10여 편을 관통할 수 있다. 저자가 고전을 아우르며 강조한 것은 인간관계와 사회관계, 즉 ‘관계’였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내 인생의 책 중 하나로 ‘사기’를 꼽는 이유는 인간과 사회를 배울 수 있어서인데, 이 책 역시 고전을 고전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지혜로 활용하는 독법을 보여줘 두고 두고 읽을 만하다”고 말했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관철돼야 한다는 것, 진리 중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