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의 수명 누릴 아이 이미 탄생했다?
“딩동, 심장 교체일입니다. 오전 10시까지 병원으로 오세요.”
2050년 8월5일 인공지능(AI) 로봇 비서가 김미래(가명)씨에게 수술 일정을 알려준다.
김미래씨는 10년 전인 2040년 피부세포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심장으로 분화시켜 삽입하는 장기재생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60세가 되는 2050년 노화된 심장을 30대의 새 장기로 바꾸기로 했다.
김씨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해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 나노 크기의 로봇이 담긴 알약을 삼키면 로봇이 혈액을 타고 인체를 돌면서 약물을 필요한 곳에 정확하게 전달한다. 또 심장에 부착한 패치를 통해 실시간으로 심장마비 위험을 확인해 알려준다. 김미래씨는 심장마비 가족력이 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급성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다행히 김씨는 패치를 통해 심장마비 5시간 전에 통보를 받는다. 병원도 같은 메시지를 받기 때문에 김씨가 오면 바로 응급처치를 한다. 얼마 전에도 AI 비서가 “5시간 내 심장마비 가능성이 85%로 높아졌다”고 알려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보너스를 받으면 간도 새로 바꿀 계획이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몇몇 중요한 장기를 새 걸로 교체했다.
‘신약’으로 대변되는 첨단 의료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 모습이다. 단순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꿈꾸는 것에서 나아가 불멸과 영생이 현실이 되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 영국의 수명연장 전문가 오브리 드 그레이는 “이미 1,000년의 수명을 누리게 될 아이가 지구상에 태어났다”며 “골동품 자동차처럼 적절하게 관리하면 영원히 우리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허풍’으로 치부되던 불멸이 ‘현실’로 바뀌고 있는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거물들 덕택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는 1997년 엘리슨의료재단을 세우고 노화방지 연구에 4억 달러를 투자했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도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칼리코라는 회사를 세우고 7억 5,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유전자조합만으로 수명을 10배 늘린 회충을 만든 신시아 케넌 박사도 칼리코에서 ‘불멸’을 연구 중이다.
기술개발 대상은 유전자와 줄기세포 치료제에 집중돼 있다. 우선은 사람을 구성하는 6만개 이상의 유전자 조합을 분석해 신체 상태와 발병 가능성 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체 내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 가능한 줄기세포 배양기술,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잘라내는 유전자 가위기술 등을 접목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다. 여기에 바이오칩, 나노로봇 등을 잘 얹으면 맞춤형 진단과 실시간 치료가 가능한 세상이 열린다.
신약으로 질병을 하나둘씩 퇴치하면서 ‘불멸’에 가까워지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당장 병원과 보험회사의 역할이 바뀔 수 밖에 없다. 진단, 치료, 수술 등을 도맡던 병원이 장기개조 클리닉이 되고, 보험사는 질병과 사망에 대한 보험금이 아닌 신체 개조와 노화 방지를 위해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출시할 것이다. 심장, 간, 폐, 다리, 팔 등 각종 장기를 바꿔주고 관리해 주는 보험상품이 많아질 듯 하다.
☞ 신약이 가져올 미래는
각국 ‘죽음’ 해결에 수억弗 투자
2050년 심장 이식·로봇 진단 가능
●신약,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물론 ‘신약’이 가져올 미래가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이미 많은 영화와 소설은 ‘신약’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를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그린다. 오는 8월 3부작의 마지막 편을 개봉하는 ‘혹성 탈출’은 인류가 멸종한 세계를 유인원들이 지배한다는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가 가정한 인류멸망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신약개발’이다. 한 과학자가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가 처음에는 탁월한 기억회복 효과를 보이다가 곧 치사율 99.8%의 변종 바이러스로 변해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내용이다.
또 사람들이 모두 좀비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나는 전설이다(2007)’도 인류 멸절을 촉발한 원인으로 ‘기적의 약’으로 불리는 암 백신을 지목했다.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100% 치료율을 보이던 약이 훗날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바뀌고 만다는 얘기다.
대중문화 속에 투영된 신약 개발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그야말로 기대와 공포 사이를 오간다. 난치병을 해결해줄 혁신적 치료제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던 마음이 치명적 부작용에 대한 공포로 순식간에 뒤집히곤 한다. 죽음이라는 섭리를 부정하고 부자연스럽게 생을 지속하려는 인간의 탐욕을 ‘신약’이라는 은유로 드러내는 경우도 잦다. 어두운 미래를 그리는 영화의 소재로 신약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일 테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과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영화나 소설도 많다. 대부분은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약의 효과를 테스트하는 임상시험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이야기들이다. 특히 1·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 포로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나치 의사들의 인체실험이라거나 일본군이 운영한 마루타 등의 실제 사례는 여러 차례 영화화·소설화되며 임상시험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임상시험은 최근 인기리에 제작되고 있는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들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쓰이며 공포와 오해를 불러온다. 분노하면 초록색 거인으로 변하는 헐크는 슈퍼 면역력을 갖춘 초인을 만들고자 했던 한 과학자의 삐뚤어진 욕망이 탄생시킨 괴물이다. 놀라운 회복능력을 가진 초능력자 울버린은 캐나다 정부의 비밀 실험에 강제로 끌려가 체내에 금속을 이식 당한 끝에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 신약 ‘기대와 공포 사이’
난치병 퇴치엔 희망-두려움 공존
암울한 미래 영화 소재로 쓰이지만
유전자가위 등 활용땐 ‘불멸’ 기대도
●비아그라 등 네이밍도 성공 필수조건
신약의 핵심은 ‘기술력’이지만 제품명으로 대표되는 마케팅 전략도 신약의 운명을 가른다. 화이자가 개발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이름으로 먼저 유명세를 탔다. ‘정력적인’이라는 뜻의 영어 비거러스(Vigorous)와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를 결합해 만들었다는 해석에서다. 실제로는 필리핀 토속어인 타갈로그어에서 고환을 의미하는 ‘바이그’의 복수형에서 유래됐다. 화이자에 근무하는 필리핀계 직원이 제안했다.
비아그라의 특허기간이 만료되자 국내에서는 복제약 이름을 놓고 경쟁이 펼쳐졌다. 한미약품이 ‘팔팔’과 ‘구구’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자 종근당은 ‘센돔’으로 맞불을 놨다. 동아제약의 ‘자이데나’는 라틴어로 ‘연인의 해결사’라는 의미이지만 ‘자 이제 되나’라는 경상도 사투리로도 불린다.
JW중외제약의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트루패스’는 고속도로 통행료 자동결제 시스템인 하이패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립선이 비대해져 배뇨 장애가 생긴다는 것에 착안해 마치 고속도로 요금소를 시원하게 통과하는 것과 같은 효능을 갖췄다는 의미를 담았다.
판매 국가에 따라 다른 제품명을 쓰기도 한다.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는 미국에서 ‘인플렉트라’로 팔린다. 미국인들에게 더 친숙한 제품명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반영한 결과다. 통상 신약 이름은 제조사가 짓지만 현지 유통사가 별도로 이름을 다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사내 공모를 하거나 신약 작명을 대행해주는 전문업체에 맡기기도 한다.
개성 있는 이름을 짓는 것은 자유지만 신약 이름으로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해당 신약이 어느 용도에 쓰이는지를 연상시키는 이름은 안 된다. 소화제 이름으로 ‘소화킹’을 쓰거나 변비약을 ‘굿바이 변비’로 짓는 것은 각국 의약품 관리기관에서 금지한다. 너무 친숙하거나 직관적인 제품명은 약물의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단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하는 전문의약품이 대상이고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은 해당 되지 않는다. /김지영·김경미·이지성 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