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철도로 박치기, 치킨 게임



치킨 게임(chicken game). 내기나 담력을 겨루려는 자동차 정면충돌 시합을 일컫는다. 마주 보고 달리다 먼저 피하는 쪽이 패자가 된다. 제임스 딘 주연 1955년 개봉작 ‘이유 없는 반항’에서 소개된 이후부터 경제학 용어로도 쓰인다. 경제학에서는 각자의 최적 선택(optimal choice)이 상대방의 선택(포기)에 의존하는 경우를 치킨 게임이라고 부른다. 반도체 전쟁, 미국과 소련이 핵 경쟁을 두고 이런 용어를 썼다.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소개된 이후 무수히 많은 영화에서 치킨 게임을 다뤘으나 대상은 모두 자동차였다.


치킨 게임을 자동차가 아니라 열차로 치렀던 시대가 있다. 때는 1869년 여름. 남북전쟁 직후 철도 개발 이권을 차지하려는 두 집단이 같은 철로에서 서로 마주 보고 달린 것이다. 사건 일시와 장소는 1869년 8월 9일 미국 뉴욕주 남부의 도시 빙햄턴 근교. 올버니-서스퀴해너 노선(Albany and Susquehanna Railrold·A&G)의 철로에서 서로에게 적의를 품은 두 집단의 열차가 충돌했다. 충돌 직전 양쪽 다 감속했지만 열차 하나는 철로를 벗어나 탈선하고 말았다. 멈춰 선 열차에서 내린 두 집단은 총격전까지 벌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전시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돈 때문이다. 철도회사 A&G의 경영권을 장악해 개발 이익을 거두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1851년부터 운행을 개시한 A&G사는 그리 이름 난 회사가 아니었다. 회사가 소유한 철도를 모두 합해야 690㎞. 우리나라 경부선(444.5㎞)보다 한참 길지만 당시 약 5만 ㎞에 이르던 미국 철도망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올버니-서스퀴해너 노선도 230㎞에 불과하고 유명 도시를 끼고 있지 않아 운행 수익도 못 올렸다. A&G가 보유한 기관차가 고작 17대, 객차와 화차도 214량에 그쳤다.

뉴욕 부근이라는 점을 빼고는 볼 게 없었던 A&G사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두 가지. 철도 회사 간 합병으로 몸집 불리기 경쟁이 일어난 데다 선로 주변에서 양질의 석탄광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자원의 존재는 축복이 아니라 돈에 눈이 먼 이리떼를 불러들이는 초청장이었다. 월가의 유명한 투기꾼 제이 굴드(Jay Gould·당시 34세)는 A&G사를 사들여 탄광을 개발하고 뉴욕시에 팔면 큰 이익이 될 것으로 여겼다. 뉴욕 인근의 철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밴더빌트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목표를 정한 굴드는 은밀하게 주식을 사들이는 한편 A&G사 내부 인물을 포섭하고 담당 지역 판사까지 매수한 뒤 설립자를 내쫓았다. 가장 적대적인 방법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선 셈이다. 설립자 조지프 H. 램지(Joseph H. Ramsey·53세)도 당하고 있지만 않았다. 변호사이며 뉴욕주 의회 상원의원을 지낸 정치가였던 램지는 굴드와 새로운 이사진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맞섰다. 인수가 지연되자 굴드는 단짝인 제임스 피스크(James Fisk·37세)를 불렀다. 피스크는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인물. 남북전쟁에서는 군복 재료인 면화를 구하려 적군인 남부와 내통도 서슴지 않았던 피스크는 굴드의 친구 겸 행동대장으로 월가를 누볐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영권 장악이 어려우니 극단의 수단을 동원하라는 굴드의 지시를 받은 피스크는 깡패 800명을 각목으로 무장시켜 열차에 태우고 적을 향해 돌진해갔다. 램지도 이에 질세라 폭력배 450명을 모았다. 램지 역시 이들 깡패부대를 열차에 태워 피스크 진영으로 내보냈다. 결국 두 열차는 충돌하고 인명 피해까지 생겼다. 피스크의 각목부대는 수가 많았지만 일부가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램지의 세력을 당할 수 없었다. 사망 10명에 수백 명이 다친 양측의 싸움은 뉴욕 주지사가 민병대를 육탄전 현장에 투입하고서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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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는 실력 행사 뿐 아니라 소송과 경영권 다툼에서도 이겼다. 든든한 우군을 만난 덕분이다. JP 모건 은행이 램지를 위해 적극 나섰다. 아버지 주니어스 모건의 은행업을 물려받은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당시 32세)은 뉴욕주 법원을 통째로 매수해 굴드와 피스크 측 임원들을 모두 내쫓았다. ‘돈 주고 병역을 회피한 재벌 2세’로만 평가됐던 모건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인수 및 합병 전쟁에 뛰어들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금융계를 쥐락펴락했다는 모건 하우스의 전설도 이때부터 비롯됐다.

승리의 주역인 모건 하우스는 추가 합병을 통해 A&S를 대형화하고 사주인 피어폰트 모건을 이사로 앉혔다. 은행이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거나 대출하는 대가로 이사직을 배정받는 ‘관계 금융(relationship financing)’의 원조 격이다. 총탄이 오간 철도전쟁 이듬해에 인수 합병을 통해 A&S사의 소유권을 넘긴 램지는 1894년 사망할 때까지 편안한 여생을 지냈다. 철도전쟁이 잊혀질 무렵인 1873년 굴드는 또 한번 사고를 쳤다. 순진한 그랜트 대통령까지 작전에 활용한 금 투기로 주식시장 붕괴는 물론 미국 경제 전체를 장기 침체에 빠뜨렸다. ‘월가의 악마’라는 별명도 이때 붙었다.

피스크는 굴드의 금 매집이 한창이던 1872년, 치정 사건에 휘말려 죽었다. 유명한 쇼걸에게 푹 빠져 선물 공세를 펼치던 그는 쇼걸의 다른 애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돈벌이나 경영권 장악을 위해서는 폭력을 마다치 않던 악한이었었으나 평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온정을 베풀었던 피스크의 장례식에는 10만 군중이 운집했다고 한다. 돈은 온정보다 차가웠다. 피스크의 부음에 당시 핵심 블루칩이던 ‘이리철도’의 주식거래량이 급증했다. 피스크가 빠지면 이리철도의 탈법과 불법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은 투자자들의 사자 주문이 밀려 주가도 크게 올랐다.

굴드는 행동파 친구의 죽음으로 힘이 빠졌는지 피스크 사망 2년 뒤에 이리철도의 경영권을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굴드가 이리철도에서 쫓겨났을 때 가장 큰돈을 번 인물은 굴드 자신이었다. ‘악당 굴드가 물러난다’는 재료로 이리철도의 주가가 급등해 보유 주식의 가치가 올랐기 때문이라고. 굴드는 56세로 죽을 때까지 재산을 잃지 않았으나 악명은 아직까지도 기억된다. 지난 2005년 한 작가가 ‘제이 굴드는 검은 천재였다’며 그를 옹호하는 책을 펴냈을 때 월가가 떠들썩할 정도였으니까. 냉혈한일지언정 ‘고귀한 피’까지 얻고 싶었던 굴드는 딸을 유럽 귀족가문에 시집보냈으나 이 커플은 ‘유럽 귀족-미국 졸부’간 결합 가운데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리해보자.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경영권 싸움이었을까. 깡패를 사서 각목부대를 편성하고 열차가 충돌하는 치킨 게임까지 불사했지만 경영권 다툼은 싱겁게 끝났다. 당사자들도 이젠 흙으로 사라졌다. 누구를, 무엇을 위해 열차가 충돌하는 치킨 게임까지 펼쳤나. 남은 게 무엇인가. 물음을 길게 이어가는 이유가 있다. 우리 앞에서 펼쳐질 수 있는 치킨 게임이 걱정이다. 악의 캐릭터를 빼닮은 것 같은 사람들도 있다. 북한 김정은은 핵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고 미국은 선제 예방공격을 불사하겠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져 수천 명이 죽어도 미국은 안전하다. 전쟁에서 죽는 사람들은 미국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막말이 판치는 세상, ‘공업용 미싱’이 떠오른다. 누가 감히 한국인의 동의 없이 치킨 게임을 하려는가.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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