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동부 시베리아서 한러 전략적 이해 찾자

민병권 정치부 차장



지난 2015년 3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현지에 도착한 기자의 귀에 북한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북한 동포들이 공항 한구석에서 귀국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로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이었다. 초췌한 차림에 바짝 마른 체구가 눈에 밟혀 가슴이 짠했다. 북한 근로자들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도 군말 없이 성실하게 일해 러시아 건설현장에서 수요가 많다고 했다.

섬뜩한 이야기도 들었다. 러시아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의 국제행사를 개최했는데 당시 정상 숙소 등의 주요 시설을 급히 마련하는 과정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일부 건설현장에 참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최고의 보안과 경호가 필요한 정상들의 행사 시설에 북한 노동력이 활용됐다니 만약 행사 직전이나 도중에 밝혀졌으면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됐을 것이다.


이런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러시아가 북한과의 교역을 지속하는 이면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현지에서 만난 학계 관계자는 “북한과의 동맹을 지키려는 차원이라기보다 역내 외교적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안보 문제를 놓고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들이 파워게임을 펼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마뜩하지 않더라도 북한에 대한 경제적·외교적 지원으로 영향력을 과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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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러시아마저도 이제는 북한과의 관계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가 의욕을 보여온 한반도 가스·송유관 사업이 북한 변수로 여의치 않게 되자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 송유관 대신 일본과의 러일 송유관 사업으로 눈을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및 탄도미사일 도발의 대가로 한층 강력한 국제적 경제·외교 제재를 받기에 이른 상황에서 러시아로서는 북한을 끼고 경제 사업을 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이런 기회를 잘 파고들어야 한다. 마침 오는 9월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 행사를 열고 주요국과의 고위급 교류를 시도한다. 이 행사를 기점으로 양국 간의 경제적·전략적 이해관계를 심화해야 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타당성이 낮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성이 낮음에도 북방 영토 관리라는 더 큰 전략적 목표를 위해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일본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광대한 영토의 시베리아 동부 지역에서 인구 및 경제 성장 부진으로 접경한 중국에 경제적·외교적 주도권의 열세를 절감하고 있는 러시아의 속앓이를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의 한 기업인이 해준 말이 기억난다.

“아무르강(흑룡강)을 경계로 저쪽(중국 쪽)은 고층 빌딩이 나날이 들어서고 휘황찬란해지는데 이쪽(러시아 쪽 동시베리아)은 개발이 정체되고 인구 유출도 심각해요” “한국처럼 경제가 발전한 나라의 자본과 기술이 투자해준다면 우리는 국경 지역의 주도권을 지키고 한국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newsroom@sedaily.com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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