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저출산, 피할 수 없으면 바꿔라

임석훈 논설위원

출산율 높이기 위한 예산 투입

교원 증원 약속과 같은 미봉책

상황 지연시킬 뿐 해결책 못 돼

현실 인정하고 정책 새로 짜야





‘엄마 미안, 나 백수 됐어’. 지난 4일 서울교육청 앞에서 벌어진 서울 지역 교대생 시위에서 한 여학생의 피켓에 적힌 글이다. 닥친 현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답답했으면 이런 표현을 했을까 싶어 마음이 짠했다. 초등 교원 임용 문제로 전국 교대생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주일 전 시도교육청이 발표한 내년도 공립교사 선발계획이 사달을 불렀다.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 임용 인원이 1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8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광주광역시는 겨우 5명에 그쳐 사상 처음 한 자릿수로 감소했다. 학생들이 뿔이 날 만하다. 임용 준비생 등이 소송까지 불사한다니 자칫 혼란이 더 커질까 우려된다.

그런데도 교육부와 교육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1수업 2교사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다. 예산 낭비라는 회의론까지 나오니 말이다. 그 사이 초등은 물론이고 중등 교원 임용 준비생들도 들고일어날 기세다. 전국 교대와 대학 초등교육과 학생들은 11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고 중등 예비교사 모임 소속 회원들도 12일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지경이 된 원죄는 저출산에 대한 교육 당국의 안이한 대응 탓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현장이 급변할 것이라는 예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2005년 감사원은 시도교육청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양성 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저출산 흐름 등을 감안하지 않은 채 1960년대에 도입한 초등교원 입학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서 “연간 6,200명인 예비 교원의 규모를 4,000명 수준으로 감축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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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지적처럼 실제로 2005년 6,225명이던 교대 입학 정원은 지난해 3,851명으로 38%나 줄었다. 하지만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이조차도 감당이 불가능한 공급 과잉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세는 가파르다. 11월 16일 치러지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 수는 60만 명이 채 안 된다. 2011년에 71만 명이었으니 불과 7년 만에 10만 명 넘게 줄어든 셈이다. 2021년에는 수능 지원자가 48만 명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현재 출생률을 보면 이것이 과장이 아니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연간 40만 명 안팎이다. 올해는 30만 명대로 36만 명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추세대로면 2025년께부터는 20만 명대에 그칠 수 있다. 국내외 연구소의 전망을 보면 단지 추산이 아니라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교원 임용절벽은 시작에 불과하고 교대 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교원 수급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저출산 쇼크가 미칠 곳은 교육계뿐일까. 국방·주택·의료 등 저출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저출산 시대에는 모든 것이 공급과잉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데도 정부나 지자체는 구태의연한 발상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제 평택시는 예산 확보와 지역 홍보를 노리고 2035년 목표인구를 120만 명으로 부풀린 도시기본계획안을 국토교통부에 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인구증가율을 봤을 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출산율을 높이려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는데도 되레 사정이 나빠지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돈을 퍼준다고 국민들이 애를 낳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출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어서 인위적으로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저출산 극복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상황을 지연시킬 뿐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급한 것은 저출산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정책 패러다임을 새로 짜는 일이다. 교원 증원 약속 등 소나기만 피하려는 미봉책은 이제 그만둬야 할 때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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