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군함도’가 처음으로 박스오피스 3위로 내려앉았다. 여전히 상위권임에도 마뜩잖은 성적이다. 애당초 정상만을 겨냥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순제작비만 220억, 손익분기점 800만 명. 국내 역대 최대치의 물량공세로 ‘천만 달성’은 응당 따라야 하는 값이었다. 오히려 ‘명량’ 관객수 1700만을 넘기느냐가 초점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개봉한 ‘군함도’는 아직 누적관객수 630만 여 명으로(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이하 동일)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 더욱이 복병인 ‘청년경찰’의 개봉 탓에 일일관객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날 ‘군함도’는 4만 7959명을 모았다.
최대 제작비와 규모, 스타 감독, 천만 동원 배우를 포함한 멀티 캐스팅, 세대가 함께 이해할 역사적 소재, 홍보 등 지금껏 ‘천만 영화’들이 가진 흥행 공식은 모두 갖췄다. 이 잘 빠진 영화가 굴욕을 안을 줄은 업계에서도 예상치 못했다.
거대 자본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던 ‘군함도’가 그 양날의 검에 베인 격이다. 개봉 첫날부터 너무 힘을 쏟았다. 압도적인 예매율로 스크린이 제공됐다는 입장이지만, 관객들에게 2027개의 스크린 수는 의구심을 넘어 분노까지 유발했다. 아무리 인기작이라 해도 2천개 이상의 스크린이 한 작품에 열린 것은 이례적이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후에는 ‘역사 왜곡 논란’이 겹쳤다. 일제 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섬)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이려 했지만, 이 과정에서 ‘착한 일본인’과 ‘나쁜 조선인’이 등장해 오히려 친일·일제 미화로 비춰졌다.
‘자본’과 ‘역사’는 대중이 가장 쉽게 공분할 영역인데 이것이 무너졌다. 영화 내, 외적으로 치명타를 입은 ‘군함도’는 예비 관객들에게 일찍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초반의 ‘역대급’ 스코어만큼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기대만큼 굴욕도 컸다.
그에 비해 ‘택시운전사’는 꾸준히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9일 40만 4956명을 동원, 10일 600만을 돌파한 상태. 2일 개봉 첫날 스크린수 1446개, 주말인 6일 1906개로 적지 않은 수임에도 불만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가 사뭇 다른 분위기인 것은 스크린수 2천선을 넘었느냐의 여부도 있지만, 시기와 반응의 문제가 크다. 처음부터 예정된 관수를 확보해 스크린수 감소 추세를 보인 ‘군함도’와 달리 ‘택시운전사’는 그 수가 점차 증가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평에 자연스럽게 관이 확보된 것을 두고 ‘독과점’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다.
‘군함도’는 결국 다양한 논란을 잠재울 만한 압도적 내적 매력도 호소하지 못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군함도’가 그간의 대작과 같은 일정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순 없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흥행의 가장 큰 요소는 ‘투자 규모’보다 ‘납득 가능한 호소와 궁극적 재미’다. 이는 곧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두 작품 모두 형태면에서 상업적 결과를 크게 기대하는 작품은 맞다. 그러나 흥행작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염두 해야겠다. 더욱이 눈치와 안목이 향상된 요즘 관객들에게는 말이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