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토요워치] 유치한 만화? 미리보는 미래죠!

■ 왜 마블에 열광하는가

'마블의 상상력' 과학발전 이끄는 밑거름 돼

슈퍼히어로의 정의…남녀노소 공감대 형성

소셜미디어로 형성된 문화상품 소비도 한 몫

누군가는 그들을 비웃는다. “먹고살기에도 팍팍한 세상인데 굳이 왜?”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마블은 이미 삶의 일부다. 이른바 ‘마블 덕후’라고 불리는 이들 얘기다.

직장인 김정현(41)씨는 퇴근 후 유튜브에 올라온 ‘마블 해설 동영상’으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인기 유튜버가 마블 영화 속 소소한 설정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짚어주는 것을 보노라면 소소하나마 지적인 성취가 이뤄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 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믹콘 서울-Comic Con Seoul(이하 코믹콘)’에 참석한 김형직(32)씨 역시 마찬가지다. “코스프레까지 준비하기에는 약간 부끄럽다”고 웃던 그는 “영화를 볼 때 현실 속 고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상호(34)씨는 “어릴 때 아이언맨과 같은 슈퍼히어로는 나에게 정의의 사도로 받아들여졌다”면서 “오랜만에 영화로 이들을 다시 만났는데 인간적인 모습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니 어릴 때 추억도 떠오르고 느낌이 더 색달랐다”며 “이제 정말 어른이 됐음을 느낀다”고 했다. 마블 캐릭터를 위시한 피규어 수천점과 ‘동거’하는 이완섭 브래드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장난감을 넘어 실제보다 더 생생한 피규어에 큰 애착을 갖고 있지만 수집의 시작점이자 원동력은 스토리”라며 “그 스토리를 결코 ‘유치한 만화’ 수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인공지능의 활용, 자율주행과 콘셉트카, 가상현실과 인터랙션 등 한때 허무맹랑한 상상력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현실이 되는 중”이라며 “시각적 완성도와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과학발전을 이끄는 밑거름이 됐기에 ‘마블’은 미리 보는 미래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블 매니아 이완섭 브래드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송은석기자마블 매니아 이완섭 브래드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송은석기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Marvel Cinematic Universes)가 2008년 ‘아이언맨1’로 막을 연 지 10년을 바라보는 지금 한국의 2040세대들은 ‘마블 열풍’의 한복판에 있다. 현실에서 찾기 어려운 희망을 마블의 영웅들에서 찾아보려는 몸부림인가? 아니면 마블코믹스라는 거대 자본의 교묘한 상업주의에 놀아난 결과인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마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이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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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속 슈퍼히어로에 대한 열광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찬철 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 교수는 “‘어벤져스’ 혹은 ‘아이언맨’ 등과 같은 MCU라는 거대한 허구적 세계에 관한 시리즈 영화들의 대중적 성공은 무엇보다도 헨리 젠킨스가 정의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시너지 효과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젠킨스의 정의에 따르면 기존의 이야기에 새로운 설정과 캐릭터를 더해가면서 하나의 단일한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통합적인 과정을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만화·게임·영화 등의 스토리텔링 매체가 디지털 시대에 들어 적합한 변화가 필요했으며 이에 부응한 것이 마블이라는 것이다.

6일 오전 서울 삼성역 코엑스에서 열린 코믹콘에서 3D프린터로 아이언맨 수트를 직접 제작, 착용한 마블 매니아가 관람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은석기자6일 오전 서울 삼성역 코엑스에서 열린 코믹콘에서 3D프린터로 아이언맨 수트를 직접 제작, 착용한 마블 매니아가 관람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한국에서의 마블 열풍이 유독 뜨거운 것도 그럴 만한 근거가 존재한다. 정 교수는 “마블 영화가 미국을 제외한 국가 중 한국에서 유독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셜미디어에서 형성된 대중 여론과 기대’가 문화상품의 소비에 끼치는 영향력이 강한 한국의 문화적 현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슈퍼히어로가 보여주는 약자에 대한 헌신적인 희생과 배려, 악을 향한 무모할 정도의 저항, 그리고 선에 대한 영원한 믿음을 몸소 실천하는 매력적이고 정의로운 모습 등의 이미지가 오늘날 한국에서 세대 간의 경계를 넘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마블 열풍의 확산과 더불어 ‘마블 덕후’는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완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블의 인기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상태로 코믹콘 전시장을 둘러보던 김모(23)씨는 “마블이 유행하며 코스프레·피규어 등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많이 완화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코스프레와 같은 소소한 취미가 좀 더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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