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들은 온몸을 던져 피를 흘리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노블레스오블리주를 발휘했죠. 그런데도 해방 후 못살고 힘들고 마이너리티가 돼 있어요. 항일운동했다고 오히려 설움을 받는 게 건강한 사회인지 되묻고 싶어요.”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60·5선·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민국의 길, 자유의 길’ 전시회장에서 3시간 넘게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가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제대로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자신과 사촌형(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다행히 교육을 받아 국회의원도 했지만 대다수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처럼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헌법 전문이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로 시작되는데 임시정부는 물론 국내와 중국 대륙, 연해주 등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독립투쟁이 전개됐다는 점에서 내년 6·13 지방선거에서 개헌할 때 ‘독립선열’ 계승 개념을 크게 반영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은 역사가 짧은데도 독립운동사를 초등학교 때부터 매우 자랑스럽게 중점을 둬 가르치죠. 그런데 우리는 제가 지난해 5월까지 원내 대표할 때 반대도 많이 했지만 국정교과서 파동이나 건국절 논란이나 나고 참 비교가 되죠.”
그가 인터뷰 다음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6형제 전시회장까지 72km 도보 행진을 한 것도 독립선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우당 등 6형제가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는 등 평생 독립투쟁에 헌신한 것을 기려 10월15일까지 전시회를 연다.
6형제는 오늘날 땅값으로 치면 수천억원은 족히 넘는 재산을 팔아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3,5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 졸업생은 일본군을 대파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 전투의 주역이 됐고 광복군에도 대거 참여했다.
우당 6형제는 중국 대륙을 누비다가 고문당해 죽고(넷째 회영) 굶어 죽고(둘째 석영) 행방불명(여섯째 호영)되고 풍토병으로 숨지는(셋째 철영)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일제에 맞서며 모두 훈장을 받았다. 이 의원은 “형제분이 모두 뜻을 같이해 가문 차원에서 독립운동을 가열차게 펼치셨는데 우당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을 제외한 4형제의 족적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신채호·김창숙 선생과 혈맹이셨던 우당은 엄혹한 일본제국주의라는 국가체제를 부정하고 자치공동체가 평등하게 연합해 끌고 가는 자유국가의 시원을 제시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려서 할머니(이은숙)랑 같이 살았는데 독립운동가의 부인으로 겪었던 파란만장한 삶을 들려주셨다”며 “아나키스트들이 보안을 위해 기억 훈련을 했다고 하던데 당신도 오직 기억에 의존해 결혼부터 서간도 망명, 베이징 생활, 독립운동가와의 교류, 남편의 죽음과 환국과정 등을 ‘서간도시종기’에 자세히 쓰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골 독립투사였던 고모부도 해방 이후 조국의 현실에 화병이 나서 돌아가셨다”며 “우당 선생을 따라 독립운동을 했던 부위 할아버지(이관직)가 생전에 할머니를 찾아뵙곤 했는데 광복군 지대장도 하셨지만 독립영웅 대접을 받기는커녕 꾀죄죄한 촌로가 돼 용돈을 받아가는 처지였다”고 회고했다.
이 의원은 “영광스런 가문의 빛도 있지만 ‘할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고 그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마음의 빚과 짐이 항상 크다”며 “2000년 총선에 뛰어들었을 때 부친이 ‘할아버지께 누가 될 것 같으면 언제든 정치를 접으라’고 말씀하셔 튀고 싶을 때도 못 튀고 한국 정치의 작은 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우당장학회’에서 연 7,000만원씩 독립운동가 후손에 장학금을 지원하는데 규모도 늘리고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료 지원 등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국회 국방위원인 이 의원은 최근 북·미 긴장 고조와 관련, “우리도 한시적 전술핵 재배치 등 보복능력을 갖춘 가운데 힘의 균형 속에서 대화를 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