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6일(현지시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 의사를 표명하며 대화의 조건으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동북아 안정을 흔드는 언행 중단 등 3대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전에도 언급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북핵 개발과 관련해 정권 초기만 해도 북한에 ‘비핵화 의지’를 요구했던 트럼프 정부가 ‘핵실험 중단’을 대화 조건으로 거듭 제시하는 데 대해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사실상 북핵 용인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외신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기꺼이 북한과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눌 것이나 아직 우리는 ‘그 지점’ 근처에 있지 않다”면서 북한에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역내를 불안정하게 하는 행위를 중단하는 성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전날 “북한과 대화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는 데 관심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미 정부가 구체적 대화 조건을 제시하며 북핵 위기를 협상 국면으로 본격 전환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밝힌 대화 조건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6자회담 재개 등에 북측의 핵동결 의지 표명 등을 선결 과제로 주장한 것보다 유연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노어트 대변인은 북측이 강력히 반발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은 오는 21일부터 예정대로 실시할 것이라고 못 박았지만 훈련 규모의 축소 가능성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백악관도 미국이 대북 군사옵션을 배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이날 한 온라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적 해법은 없다. 그건 잊어버려라”라고 말했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그는 “누군가 (전쟁 시작) 30분 안에 재래식 무기의 공격으로 서울에 사는 1,000만명이 죽지 않을 수 있는 방정식을 풀어 제시할 때까지 군사 해법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과 경제전쟁을 하고 있다. 경제전쟁이 가장 중요하다”며 최근 불거진 한반도 위기는 “단지 사이드 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북측에 협상 카드를 내밀고 중국도 북측의 추가 도발 억제를 계속 압박하면서 국제사회 이목은 북한의 선택에 집중돼 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17일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이 전날 북중 접경에 위치한 랴오닝성 선양의 중국군 사령부를 방문했다며 이는 중국이 북한에 추가 도발을 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자 대화만이 유일한 접근법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은 북핵 해결에 외교적 해법을 우선한다는 원칙에 따라 16일 칠레를 방문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칠레 등 중남미 4개국에 북한과 외교·통상관계를 전면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외교적 고립 여부를 굉장히 비중 있게 보고 있다”며 “오늘 칠레에 강하게 촉구한다. 동시에 브라질과 멕시코·페루도 북한과 외교·통상관계를 모두 단절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