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남자’는 타 드라마와 비교해 유달리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눈에 띄게 자본을 투자하지도 않았다. 전작 ‘군주’와 후속작 ‘병원선’ 사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타 드라마보다 짧은 24부작(1일 2회 방송)으로 편성된 ‘땜빵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 불륜, 신데렐라라는 국내 드라마의 흔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 백작’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시트콤을 보는 듯한 신선한 연출로 차별화를 꾀했던 것이다. 이 같은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땜빵’으로 시작한 것과는 달리 단번에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적’을 일으켰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1970년대 중동으로 건너가 보두안티아 공화국의 백작이 된 남자가 딸을 찾기 위해 한국에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그린 코믹 가족 휴먼 드라마다. 최민수는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주된 이야기는 백작이 딸을 찾아 막대한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딸을 데려오지 못하면 재산을 몰수당한다. 딸을 찾는 과정에서 두 후보 이지영A(강예원 분)와 이지영B(이소연 분)가 등장했다. 그 중 진짜 딸인 이지영A는 그야말로 짠내 나는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이지영이 부자 아버지와 만나 인생 역전하기를 바라는 것이 시청자들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모두가 예상하듯 백작은 이지영A와 이지영B를 혼동했다. 비록 ‘고구마 구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이 고비만 넘기면 이지영A 인생에 볕들 날 오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더한 고구마가 찾아왔다. 이지영A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서운함과 미운 마음이 생각보다 더욱 컸던 것이다. 백작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밀어내면서 전개는 또 다시 ‘지지부진’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백작마저 이지영A에게 “나는 재산 때문에 네가 필요한 것이다”라며 실언을 했다. 전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한국까지 건너온 백작임을 고려할 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지영A가 더욱 반감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 결국 부녀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불운한 가정생활을 지켜온 이지영A가 남편 및 시댁과의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도 개운치가 않다. 이지영A 남편 강호림(신성록 분)은 이지영B와 불륜 관계였다. 지금은 관계를 청산(?)했지만 드라마 초반만 해도 아내는 무시하면서 이지영B에게는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굴었다. 가족여행 한 번 못 간 아내의 상처를 ‘자격지심’이라고 이를 정도로 못난 남편이었다.
그러던 강호림이 어느 순간 변했다. 세상 둘도 없는 순애보 남편이 돼서 오히려 백작에게 아버지답지 못하다고 훈계를 한다. 이지영A가 백작에게 각종 선물을 받자 “자존심도 없냐”고 말했다. 이미 본인의 가족이 7년 전에 뭉개버린 자존심이었는데 말이다.
시댁 또한 태세전환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지영A를 무시했던 시댁은 아버지가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초반 안방극장의 답답함을 일으켰던 시댁이었고, 사실 이에 대해 많은 시청자들은 아버지가 부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지영A의 통쾌한 반격이 있길 바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결과 값’을 받지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좋은 사돈이 생긴 것일 뿐이며, 심지어 7년 전에 받지 못한 예단까지 받아냈다. 모든 갈등은 급하고 또 허무하게 풀어졌으며, 결국 아버지를 만난 후의 혼란스러움과 슬픔은 오로지 이지영A만 떠안고 있다.
‘코믹 가족 휴먼 드라마’라는 소개에서 드러나듯 드라마는 돈보다는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작과 이지영A가 투닥거리면서도 조금이나마 추억을 공유하고 정을 쌓아가고 있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지영A가 백작의 재산을 거부하는 상황도 결국은 가족의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정으로 엮여야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방송이 다음 주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지영A의 마음을 단번에 돌릴 수 있는 것은 많은 시청자들이 예상하듯 백작의 건강문제 밖에 없다. 앞서 백작은 여러 차례 휘청거리고 쓰러지기까지 하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암시를 보였다. 이마저도 누구나 예측하기 쉬운 고비를 사용하면서 이들의 케케묵은 갈등을 해결하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죽어야 사는 남자’는 치밀하지 못한 이야기를 코믹한 에피소드로 보완했다. 유쾌함을 바탕으로 한 만큼 어느 정도의 개연성 부족은 건너 뛸 수 있었다. 최민수가 딸은 바뀌어도 사위는 바뀌지 않는다며 울분을 토한 것, 이지영A가 자신을 납치한 양양(황승언 분)과 살벌한 육탄전을 벌이며 사실상 KO시키는 모습을 보여준 것과 같은 요소들은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것은 단연 배우의 연기력이었다. 심오한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대신 망가짐을 불사하는 코믹 열연을 통해 역할의 맛을 살린 것이었다. 앞서 강예원이 “대발이 때부터 최민수 선배님의 팬이었다. 코믹연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고 말한 것처럼 최민수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표정과 발성 등 코믹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최민수의 하드캐리도 결국은 작품이 뒷받침될 때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뻔한 드라마가 아니어서 신선했고 사랑받았다. 독특한 캐릭터 설정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를 살린 팔 할은 배우의 공이었다. 타 드라마에서도 숱하게 봐왔던 흔한 이야기 대신에 ‘죽어야 사는 남자’만이 가지고 있는 B+급 감성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란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