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호황을 등에 업고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는 중소 정보기술(IT) 부품 업체들의 불량 상장이 나타나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 IT 제조사들마저 ‘IT 빅사이클’을 타고 높은 프리미엄으로 우후죽순 상장에 나서면 향후 산업 추세가 꺾였을 때 실적과 주가가 곤두박질칠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IT와 관련한 상장 기업은 총 13개다. 이 기간까지 신규 상장하는 총 50개 기업 가운데 26%가량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이다.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IT 제조사들의 평균 상장 점유율인 18%보다 훨씬 높은 비중이다. 신규 상장을 준비하는 IT 제조사들도 내년까지 줄을 잇고 있다. 증권사 기업공개(IPO)팀의 관계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자 중소 IT 부품 및 제조 업체들도 반짝 실적 상승 효과를 누리며 앞다퉈 IPO를 추진하고 있다”며 “최근 상장 중소기업들은 IT 소재 업종보다 장비 위주의 기업이 많은데 이들 장비 업종은 산업 사이클이 꺾이면 실적에 가장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달 상장한 디스플레이 검사장비 업체 A사의 경우 디스플레이 시황에 따라 매출의 변동성이 400% 이상 차이 난다. 단일 제품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특히 장비 업체의 경우 전방 산업의 호황에 맞춰 투자가 진행되며 부채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리스크도 발생한다. A사는 총부채가 2015년 39억원에서 지난해 75억원으로 늘어났다. 또 같은 달 상장한 B사는 삼성전자의 메인벤더가 아닌 2차 하청 업체로 2차 벤더로는 보기 드물게 상장까지 이어졌다. IT 업계에 따르면 1차 벤더는 꾸준히 납품을 하는 데 비해 2차 벤더는 가격에 따라 거래처가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실적 변동성도 그만큼 크다. 이 같은 회사들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황이 꺾이면 언제든지 급격한 적자로 돌아설 수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일부 금융투자 업계에서 우려를 나타낸다.
펀더멘털보다 호황에 올라타 상장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매물 우려가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A사의 경우 IPO 이후 대주주 물량은 보호예수가 걸려 있지만 투자 업체들의 물량은 언제든 매물이 나올 수 있도록 풀려 있다. 특히 자금 확보를 위해 단순 투자로 들어온 업체의 매물은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는다.
IT 업종의 호황으로 상장에 재도전하는 기업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제조 업체 N사도 급격한 실적 증가로 한 증권사와 최근 상장주관 계약을 맺고 내년을 목표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중소 IT 제조사들의 상장 추세는 반도체 가격 대세 상승과 OLED 디스플레이 교체 수요 덕분으로 풀이된다. 경기 변동이 심한 IT 장비 산업 내 기업들이 이 같은 호황을 맞아 이익 규모가 늘어나자 너나 할 것 없이 IPO에 나서는 것이다. 남대종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4·4분기에도 모바일 D램의 고정 가격은 인상될 여지가 있으나 PC 및 서버 D램과 낸드 가격의 상승 속도는 다소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 2·4분기 스마트폰 수요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전분기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