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정부는 건강보험보장성확대 방안,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면서 “5년간 30조6,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30조6,000억원’이 이번에 발표한 정책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소요분이라는 점이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노인 인구와 그에 따라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료비 증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연 증가분을 넣은 건보 지출 추계는 얼마나 될까. 이는 정부가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사회보험 중기재정 추계’를 보면 된다. 3월 발표한 추계에 따르면 건보 가입자들에게 지급하는 보험급여 지출 증가분은 향후 5년간 83조8,361억원이다. 여기에 문제인 케어에 따른 재원 소요까지 더해야 정확한 지출 규모가 나온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3월 중기재정 추계는 최근 발표한 정책 이전에 계산한 것이지만 건보확대 정책의 추세까지 감안했다”며 “정책적 부분에 따른 지출 증가분만도 24조원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건보확대 정책의 지출 소요 30조6,000억원 가운데 약 24조원은 중기재정 추계 때 반영됐다는 것으로 나머지 6조6,000억원은 빠졌다는 얘기다. 결국 이 금액과 자연증가분 83조8,361억원을 더한 90조4,361억원이 5년치 지출 증가분이 된다.
안 그래도 빠르게 증가하는 건보 지출에 문재인 케어가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늘어나는 건보 지출 가운데 12조원 가량은 국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할 전망이다. 지출을 상쇄하기 위한 건보 수입에는 보험료 수입, 건강증진기금 지원 등이 있는데 이런 금액을 다 합쳐도 90조원의 지출을 메우기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험료 수입의 경우 정부 목표대로 연평균 3.2%씩 인상한다고 가정하고 중기재정 추계와 보험료율 1%포인트 상승 시 보험료 수입이 4,500억~5,000억원가량 늘어난다는 점 등을 종합해 계산하면 5년간 약 67조991억원의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건강증진기금 지원 증가분은 최근 담배부담금 증가 추이를 고려하면 1조968억원 정도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그동안의 건보 누적 적립금 20조원 가운데 10조원도 풀겠다고 밝힌 상태다.
모두 더하면 수입 증가분은 총 78조1,959억원으로 앞서 계산한 지출 증가분 90조4,361억원에 12조2,402억원이 부족하다. 이 부족분은 국가재정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특히 이런 계산은 보험료를 연평균 3.2%씩 차질없이 올린다는 전제 아래 나온 것으로 보험료를 올리지 못하면 그만큼 국고 부담은 늘어난다.
문제는 수조원에 이르는 복지재원 소요가 건강보험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5년간 22조5,000억원의 국비가 들어가는 기초연금 인상은 물론 아동수당 신설(9조6,000억원), 기초생활보장 제도 확대(9조5,000억원) 등도 당장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막대한 재원이 드는 복지정책들을 집권 1년차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니 결과적으로 다른 분야의 예산이 복지에 밀려 쪼그라들거나 국가 채무가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재정 분야의 한 전문가는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한꺼번에 모든 복지정책을 추진하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선택과 집중,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