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文정부 첫예산]‘줄일 수 없는 돈’ 의무지출 첫 50% 돌파

복지 확대 정책으로 내년 50.8%...50% 돌파시점 1년 앞당겨져

“속도 너무 빨라...신중하게 늘려야”

정부 지출 구조조정 방해할 가능성

정부 재정통제력도 약화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의 특징 중 하나는 의무지출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는다는 것이다. 의무지출이란 복지,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교부금, 정부 부채에 따른 이자 등 한 번 편성하면 ‘칼 질’ 할 수 없는 것이다. 내년 예산 중 복지지출이 크게 늘며 의무지출도 껑충 뛰었다.

29일 정부가 발표한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내년 재정지출 429조원 중 의무지출은 218조로 50.8%에 달한다. 올해 49.2%에서 1.6%포인트 오른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의무지출 비중이 2019년에야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지만 복지지출이 늘면서 1년 앞당겨졌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의무지출의 비중은 매년 더 증가하게 된다. 2019년은 51.9%, 2020년은 52.3%, 2021년은 53.0%로 점차 늘어난다.

물론 복지지출이 늘어날 수록 의무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국(63%), 프랑스(67%), 미국(71%) 등 주요국 의무지출은 이미 50%를 넘어섰다. 문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올해 의무지출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 비해 23.8% 급증해 재량(7.3%)의 3배가 넘었다. 총지출 증가율(14.8%)보다도 빨랐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의무지출은 한 번 예산에 편입되면 건드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철저하게 검증한 후 늘려야 한다”며 “최근의 복지지출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내년 7월부터 0~5세 자녀 모두에게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주는 게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복지전문가는 “출산율을 높이려면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정책을 써야 하는데 아동수당 10만원은 이를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라고, 아동수당을 주지 않아도 아이를 낳을 계층에 수당을 줘 재정부담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무지출 급증세가 안 그래도 힘든 정부 지출 구조조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정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집권 5년간 62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400조 5,000억원의 예산 중 ‘칼 질’이 안 되는 의무지출이 절반에 가까우며 사실상 손 댈 수 없는 공무원 인건비, 청사 유지·운영경비 등 경직성 지출이 145조원에 달한다. 줄일 여력이 있는 것은 약 60조원에 불과한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사회간접자본(SOC), 연구개발(R&D)이라 이 또한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뜩이나 달성 불가능해 보였던 지출 구조조정 목표 달성이 더 멀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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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재정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일 때 정부는 그동안의 확장적 재정지출을 거둬들여 경기가 급속히 팽창하고 물가가 급등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의무지출이 높다면 정부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랏돈은 계속 풀리게 돼 물가가 고공 행진하고 경기가 ‘오버슈팅’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물가가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재량지출을 대폭 줄이는데, 이에 따른 기회비용도 발생한다. 박인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2009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확대 재정을 편 정부가 2010년 긴축재정을 펴려 했지만 의무지출이 많아 이는 못 건드리고 재량지출만 대폭 줄인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정 건전성을 순식간에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가령 세금 수입이 저조할 때는 정부 지출도 다소 줄여 재정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의무지출이 높다면 생각만큼 줄일 수 없어 국가부채가 단번에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의무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체계적으로 관리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정부·국회는 의무지출이 빠르게 늘어날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정부 예산을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구분하기 시작했으며 2012년부터 매년 5년 단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의무지출 비중 예상치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의무지출 예상치는 바뀌고 있고 본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아무런 연계가 되지 않고 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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