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29일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61)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의 판결문을 증거로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한 쪽은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로 전해졌다. 뇌물공여죄로 유죄 판단을 받은 이 부회장의 판결문을 통해 뇌물수수자로 지목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혐의를 입증하겠단 취지로 분석된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양측은 판결문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동의하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선 반박하겠다고 전했다. 최씨 측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는 “이미 판결문을 입수해서 봤다”며 “판결 내용에 문제가 있어 입증 취지에 대해서는 다투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판결문은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사건을 심리한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가 200쪽이 넘는 판결문을 통해 정유라씨(21) 승마 지원금 73억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을 뇌물로 인정한 만큼, 박 전 대통령과 최씨도 이 혐의에 대해선 유죄 판결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법조계는 내다봤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근거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 번째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이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아내기로 공모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묵시적인’ 부정청탁이 존재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뇌물죄의 공범으로 본 근거로 최씨가 장시호씨(38)에게 영재센터 예산안 작성을 지시하면서 ‘위에 갈 거니까 잘못 쓰면 안 된다’, ‘삼성에 갈 거니까 잘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한 점을 제시했다. 장씨는 최씨가 말한 ‘위’는 대통령을 뜻한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이 코어스포츠의 금융업무를 도운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의 승진인사를 직접 지시한 점도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승마지원이 이뤄지던 시점에 최씨로부터 이 전 본부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인사 부탁을 들어줬단 것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유력한 간접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정씨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후원은 대가를 주고받겠다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묵시적 합의 아래 이뤄진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 근거로 ‘청와대 캐비닛 문건’에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던 점, 삼성 측이 사업성 검토조차 없이 영재센터를 후원하면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은 정윤회씨 또는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언론보도가 이어지던 2014년 12월~2015년 1월 무렵에는 승마지원 요구가 정씨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형사합의22부가 형사합의27부와 다른 판단을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에 대한 판단은 각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의 몫이기 때문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