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9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아 올린 것은 미국·일본 등 주변국들을 압박해 외교·군사적 주도권을 쥐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또 우리나라가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석론’을 견제해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밑그림을 흔들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북한은 이처럼 주변국들의 인내력 한계선을 넘나들며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의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도발의 수위가 심화할 경우 우리 정부도 더 이상 대화로 해결하자고 주변국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져 한반도에 다시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①국제사회 조롱하며 ‘괌 사격’ 능력 과시=정부와 전문가들은 ‘화성-12형’이나 ‘화성-10형(무수단미사일)’으로 추정되는 이번 IRBM의 궤적에 주목하고 있다.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 최대고도 550여㎞로 약 2,700㎞를 29분간 비행했다. 북한에서 미군기지가 위치한 괌까지의 거리는 약 3,000㎞다. 이에 대해 김성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그동안 탄도미사일을 고각으로 쏴서 실제 비행가능거리보다 짧게 비행시켜왔는데 이번에는 최대비행거리까지 날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를 통해 괌을 사정권에 두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②주일미군 타격 능력도 보인 듯=해당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면서 당초의 예상 경로가 아닌 다른 코스를 이용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일본은 당초 북한이 ‘괌 포위사격’ 위협 시 밝힌 사격 궤도 등에 근거해 자국 서부지역에 패트리엇(PAC-3) 미사일 4기를 요격수단으로 배치했다. 하지만 정작 29일 북한이 날린 IRBM은 일본 동북지역의 홋카이도 상공을 지나갔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등 주변국들의 영토 어디에도 미사일을 꽂을 수 있음을 시연한 셈이다. 특히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증파 역할을 담당할 주일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 것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진단이다.
③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반발 메시지=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이번 도발은 최근 한미가 진행하고 있는 군사훈련인 UFG에 대한 반발의 메시지로도 읽힌다”고 해석했다. 지난해보다 미군의 참가 규모가 줄었고 공세적 작전이 아닌 방어적 작전 차원의 훈련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군사적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략무기로 전용될 수도 있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한미 양국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동시에 자국군의 사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우리 군 당국의 시각이다.
④북미 대화 시 협상 주도권 겨냥=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인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은 이번 미사일 도발에 대해 “북한이 대외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국면 속에서도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외교적·군사적 흐름을 주도하려는 것이라는 진단이다. 우리나라나 미국 등이 선제적으로 북한을 공격하기도 어려운 상황임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고 김 의원은 분석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이 같은 냉엄한 정세를 현실적으로 잘 읽고 핵을 보유하려는 북한에 맞서기 위한 ‘공포의 균형’ 정책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