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종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대학장(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은 뜻밖의 이메일을 받았다. 인공지능(AI) 컴퓨팅 분야의 선두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메일을 보내 KAIST가 주최하는 ‘AI 월드컵’을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는 “AI로봇 연구센터를 공동 건립하자”는 제안도 했다.
김정호 KAIST 연구처장은 31일 본지와 만나 “AI 분야의 지속적 연구개발(R&D)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엔비디아와 AI로봇 연구센터를 건립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엔비디아는) 연구센터를 통해 기술에서 한발 앞서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동시에 AI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둑을 놓고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대결한 적은 있지만, 스포츠 종목에서 AI 경기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11월 열리는 이 대회는 AI 기술을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한 5개의 미니로봇이 한 팀을 이뤄 상대 팀 골대에 골을 넣어 득점이 많은 팀이 이기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AI 축구선수뿐만 아니라 경기 영상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AI 경기해설’, 경기 결과를 기사로 작성하는 ‘AI 기자’ 등 3개 종목으로 구성된다. 컴퓨터 서버에 각 팀이 짠 인공지능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경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화면 안에서 미니로봇간 경기가 펼쳐지고 경기 해설과 기사 작성이 이뤄진다.
전 세계적으로 AI 인재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직접 한국 대학을 접촉하는 등 AI 인재를 입도선매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엔비디아는 물론 구글·애플·페이스북·인텔 등이 인재확보를 위해 곧바로 한국으로 뛰어드는 상황이다. 스카우트 대상이 미국의 유명 공대 연구실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유학생에서 논문 등 연구성과나 아이디어가 있는 한국 대학의 학생으로 넓어졌다. 국경을 뛰어넘어 실력 있는 인재 찾기에 나선 것이다.
특히 AI와 함께 빅데이터·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관련된 분야의 전공자에게 러브콜이 몰린다. KAIST에서는 최근 3년간 전기 및 전자공학부, 전산학부 졸업생 45명 가량이 엔비디아·애플·인텔 등으로 스카우트됐다. 서울대 공대 출신 졸업생 10여 명도 실리콘밸리에서 둥지를 튼 것으로 파악됐다. 3차원 반도체 설계를 연구하는 김정호 교수 연구실에선 석박사 졸업생 70여명 중 23명이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았을 정도다.
가령 10여 년 전 엔비디아에 입사해 반도체 설계 파트를 담당해 온 정대현 씨는 현재 AI 서버 모듈 설계 책임자(매니저)로 맹활약 중이다. 동문 선배인 정 씨의 추천으로 올 초부터 엔비디아에서 인턴십 과정을 밟고 있는 최수민(KAIST 전자전기공학부) 씨는 내년 8월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정식 입사한다. 김 교수는 “최 씨가 복도에서 젠슨 황 CEO와 자주 마주쳐 편하게 인사하는 것은 물론 얼마 전에는 젠슨 황의 자택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면서 “글로벌 IT 기업들이 국적·연령과 상관 없이 4차 산업혁명, 특히 AI 분야의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또 “AI 인재 품귀 현상이 이어지면서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은 석박사 졸업생뿐만 아니라 대학 재학생에도 관심이 많다”고 덧붙였다. 인턴십 제도를 통해 연구성과와 잠재력을 인정받은 학생을 일찌감치 확보한다.
이처럼 글로벌 IT 기업들이 인재 확보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높은 연봉과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선도기업이라는 네임밸류 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대기업의 신입 연구원은 평균 연봉 13만 달러(약 1억5,000만원) 이상에 상당한 스톡옵션을 보장받는다. 특출한 연구 성과를 가진 인력에 대해선 최고 인재 스카우트용 비자까지 준다. KAIST 출신으로 현재 인텔과 애플에 몸 담고 있는 김가원 박사, 심유정 박사도 스카우트 비자를 받고 미국행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