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패소] 法 "추가수당 줘도 회사 문제없다" 경영여건 자의적 판단 논란

노조 손 들어준 법원

사드 보복·통상압력 등 영업익 감소 불보듯 뻔한데

"사측 명확한 증거자료 제출 안해" 판단과정서 배제

신의칙 적용 눈높이 달라...2심서 판결 뒤집힐지 주목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이 내려진 31일 서울중앙지법 1번 법정출입구 앞에서 기아차 노조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송은석기자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이 내려진 31일 서울중앙지법 1번 법정출입구 앞에서 기아차 노조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송은석기자


지난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인정한 판례를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민법 제2조 ‘신의성실의 원칙’을 내세웠다. 근로자가 통상임금을 재산정해 이를 토대로 추가 수당을 달라고 해도 그 요구가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위기를 초래한다면 “신의칙을 위배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근로자의 추가 수당 요구가 기업의 생명줄까지 위협하지는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건 셈이다.

하지만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31일 4,223억원을 추가 수당으로 지급해도 회사 경영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계는 “경영을 위협하는 요인이 불 보듯 뻔한데도 재판부가 그 피해를 계산할 수 없다며 자의적으로 경영 여건을 판단한 것 아니냐”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0115A03 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판결 내용


기아차 근로자 2만7,400여명은 이번 소송에서 연 750%인 정기 상여금과 영업활동비(일비), 점심식사비(중식대)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새로 계산한 통상임금을 근거로 2008~2011년의 연장·휴일근무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달라고 했다. 근로자들은 이렇게 계산한 추가 수당 총 1조926억원을 사측에 달라고 청구했다. 재판부는 판례와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기 상여금과 중식대를 통상임금에 반영했다. 대신 노사가 당초 약정했던 야간근로시간에 대한 수당이나 특근수당 추가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휴일근로가 주 40시간이 넘으면 연장근로수당을 중복으로 가산해달라는 노조의 요구도 물리쳤다. 결국 재판부가 인정한 추가 수당은 1조926억원 가운데 4,223억원이다.


재계는 추가 수당의 액수보다도 재판부가 기아차의 경영 상태를 고려해 근로자의 추가 수당 요구가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점을 문제 삼는다. 재판부는 근로자의 추가 수당 요구가 기아차가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울 가능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봤다. 기아차가 2008~2015년에 매년 1조~16조원의 이익 잉여금을 보유했고 같은 기간 부채비율이 169.14%에서 63.7%로 낮아졌으니 경영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다. 기아차는 이번 소송 결과를 전 근로자로 확대하고 올해까지의 수당 소급분을 적용하면 재정 부담액이 1조원에 이른다고 본다. 근로자들이 제기할 추가 소송 등을 고려하면 그 비용은 3조원 이상으로 뛴다. 그런데 재판부는 기업의 과거 경영실적이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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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미래 위협 요소와 향후 투자 비용도 기아차 경영 상태의 판단 과정에서 배제했다. 기아차가 정확한 예상 비용을 대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통상압력 등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기아차가 이에 관한 명확한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기아차는 이미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7,8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 급감했다. 영업이익률은 2010년 상반기 이후 최저치인 3%까지 떨어졌다고 회사는 밝혔다. 3·4분기에는 추가 수당 충당금을 쌓으면서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미래 자동차의 대세인 전기차·자율주행차 투자 필요성도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지 못했다. 재판부는 “신기술 도입에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자금의 적정 규모도 판단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최근 영업이익 감소 상황은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최고경영진도 단정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투자·실적 전망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최근 통상임금 소송에서 하급심과 상급심의 신의칙 적용이 엇갈리는 점을 변수로 지목한다. 기업의 경영 상태에 대한 각급 법원의 시각 차이가 커 2심 판결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금호타이어 근로자들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광주고법은 “추가 수당 요구가 기업에 수백억대 피해를 줄 것”이라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기아차 노조 변호인인 김기덕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변호사는 “2심에서 신의칙 관련 판단이 바뀔 가능성은 우려된다”면서도 “이번 소송은 (금호타이어와 같은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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