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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방송가 파업①] “엠XX 아니고 마봉춘”…MBC 파업, 주사위는 던져졌다

MBC가 4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 2012년 170일간의 파업 이후 5년 만이다. 역대 가장 길었던 파업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가 사측과 노조 측 사이에 남아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노조)는 지난 2월 김장겸이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끊임없이 사퇴를 요구해왔다. 같은 달 24일 “김장겸 씨는 MBC를 철저하게 몰락시킨 장본인”이라며 “김재철·안광한 사장을 거치는 동안 그는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으로 지난 6년 간 MBC 뉴스를 좌우했다.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냈다.




/사진=MBC/사진=MBC


6월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사제작국 PD를 비롯해 편성·예능·드라마 PD 및 아나운서들은 꾸준히 입장을 밝혔다. 당시 ‘무한도전’ 김태호 PD를 비롯한 예능국 PD들은 “쪽팔린 이름 ‘엠빙신’만 남았다”며 “자체 검열, 제작비 삭감, 노조 가입 훼방 등에 앞장 선 김장겸은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 웃기는 건 우리 예능 PD들의 몫이다”라고 전했다.

본격적인 제작 거부 움직임은 7월 21일 시사교양프로그램 ‘PD 수첩’에서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 눈물 장면 삭제, 이명박 전 대통령 비판 후 부당 전보, 국정원·교과서 국정화·4대강 녹조 아이템 불허 등 제작 자율성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재갈을 물리려는 자들에 맞서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시사제작국에서 ‘PD수첩’ 제작진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사 담당 PD와 기자들은 8월 3일부터 제작 중단에 돌입하겠다고 밝히며 “그동안 누적돼온 검열과 불방조치, 제작 자율성 침해 행위가 비단 ‘PD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장겸, 김도인, 조창호는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PD수첩’과 ‘시사매거진2580’의 결방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8월 8일 MBC노조는 ‘MBC판 블랙리스트’ 문건을 폭로했다. 문건의 정확한 명칭은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로, 김장겸 사장이 보도국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13년 7월 6일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MBC 영상기자들은 노동조합 활동과 회사정책 충성도 기준에 따라 네 개의 등급으로 분류돼있다.

사측은 “내부 인사들도 금시초문인 유령 문건”이라 주장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언론노조에게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9일에는 다른 노조의 카메라 기자가 작성자인 것으로 밝혀졌다며 엄중하게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MBC노조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개인차원의 일로 치부하고 꼬리 자르려 하고 있다고 반응했다.

블랙리스트 문건 폭로 이후 제작 중단에 합류하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영상기자회는 “직원들을 블랙리스트를 통해 소·돼지처럼 등급분류하고,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했다”며 “2012년 170일 파업이후, 보도영상부문이 공중분해 됐다. 노예들처럼 살아온 MBC영상기자들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작중단을 시작한다”고 성명을 냈다.

콘텐츠제작국에서도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유린됐다고 주장했다. 시사교양국을 해체한 후 신입 PD 채용을 중단하고 기존 PD를 관련 없는 업무로 ‘유배’시켰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보도국기자 80여명도 블랙리스트 제작과 저널리즘 유린을 이유로 제작 중단에 합류했다. 제작 거부 인원이 어느덧 200명을 넘어섰다.

/사진=MBC/사진=MBC


아나운서의 방송 및 업무 거부도 이어졌다. 아나운서 27인은 “영상기자들의 블랙리스트 문건이나 고영주 이사장의 녹취록 같은 물증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을 뿐, 가장 심각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자행된 곳”이라며 “김장겸 사장 등 현 경영진과 신동호 국장은 지금 당장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뉴스데스크’ 배현진 앵커와 양승은 아나운서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사프로그램과 뉴스의 정상 방송에 차질이 생겼다. 파업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라디오국, 예능국, 드라마국에서도 뜻을 모아 성명을 발표했고, MBC 총파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MBC노조는 결국 8월 24일부터 29일까지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시행하겠다고 공고했다. 9월 총파업이 가시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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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PD들은 8월 24일 성명을 통해 “28일 오전 5시를 기해 제작거부에 돌입 한다”며 “제작자율성 말살의 최종책임자인 김장겸 사장,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백종문 부사장, 그리고 라디오 추락의 주범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 등이 결방되고 음악 방송으로 대체됐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를 비롯한 예능국 PD 56명도 총회를 열고 총파업 결의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편성국 PD와 드라마 PD들 역시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로써 시사제작국·콘텐츠제작국·라디오국·편성국·아나운서국·보도국·비보도국 등에서 400여 명이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

MBC측 관계자는 “‘나 혼자 산다’와 ‘무한도전’이 각각 1일과 2일까지만 정상 방송될 예정이다”며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촬영된 분량이 있어 결방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 주말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의 주성우 PD는 자신도 노조원이라고 밝힌 후 “방송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결방 가능성을 언급했다.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는 압도적 찬성이었다. 전체 조합원 1758명 중 1682명이 투표했으며, 1568명이 찬성해 93.2%의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 MBC노조는 “송출 등 필수 인력을 전혀 남기지 않고 예외 없이 전 조합원을 참여시킬 예정이다. 방송 파행은 제작 종사자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전례 없이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MBC노조는 지난 2010년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후 불공정 편파 방송을 이유로 2012년 파업에 돌입했다. 당시 김재철 사장은 해임 직전 자진사퇴했다. 그러나 MBC노조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파업 참여 구성원들은 해직되거나 비주류 부서로 발령 났고 불참한 구성원은 승진했다. 아나운서 및 PD들이 다른 방송사로 이적하며 인력 유출도 발생했다.

/사진=MBC/사진=MBC


2012년과 2017년 파업이 궁극적으로 외치는 것은 공영방송 정상화다. 물론 5년 동안 달라진 것은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이명박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다는 것이다. MBC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됐다. 8월 22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됐다”며 “신속하게 수사가 마무리되면 검찰 송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측에 희망적인 움직임이 한 가지 더 있다. 드라마기획국장 최원석을 비롯한 간부 57명이 총파업 본격 돌입 전부터 동참 선언을 한 것이다. 이들은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상황을 기점으로 보직 사퇴를 통해 경영진의 책임과 결단을 요구할 것”이라며 성명을 냈다. 앞서 개별적으로 사퇴를 선언한 10명을 더하면 보직 사퇴자는 67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현 MBC가 처한 상황에 대해 사측과 노조 측의 의견은 비슷하다. 사측은 “지상파 방송사를 둘러싼 방송환경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7월까지 우리 회사 광고매출은 작년에 비해 16%가 줄었고, 경쟁사인 SBS에게도 1백억 원 이상 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측도 “MBC의 경쟁력은 바닥이다. 2017년 경영수지는 대규모 적자를 예고하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책임을 돌리는 곳이 다르다. 사측은 “2012년 파업을 비롯해 모두 12번의 파업이 이뤄졌다. 그때마다 MBC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다”며 시청자들의 불신 및 현 상황의 책임을 파업에 돌렸다. 노조 측은 “2012년 파업 이후 경쟁력의 핵심인 인력은 보복인사로 사분오열, 외부 시장 변화 대응을 위한 중장기 전략과 투자는 오락가락”이라며 경영진의 무능을 꼬집었다.

노조측과 사측 모두 단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으며 팽팽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여느 때보다 강도 높은 파업이 예고됐고, MBC의 상황은 풍전등화와도 같다. 2012년, 혹은 2010년부터 시작된 이 지독한 갈등을 끝낼 때가 왔다. MBC는 과연 이번 파업을 통해 ‘엠빙신’이라는 오명을 벗고 친근함의 상징이었던 ‘마봉춘’ 타이틀을 회복할 수 있을까.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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