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WTO 압박해 바뀐 '보잉-에어버스 보조금 판결'…트럼프 발등 찍나

"주 정부, 보잉에 준 보조금 합법"

WTO상소기구 1년 전 결정 번복

트럼프 "WTO 탈퇴" 먹혔지만

'항공굴기' 내세운 中에 빌미 제공

보조금 쏟아부을 땐 美 위협될수도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항공사인 보잉과 에어버스 간 ‘보조금 전쟁’에서 지난해 에어버스의 주장을 수용했던 세계무역기구(WTO)가 1년 만에 결정을 뒤집고 보잉의 손을 들어줘 파장이 예상된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면 WTO에서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나온 결정이다. 다만 13년째 복잡하게 이어져 온 항공사 간 갈등에서 미국이 이번에는 승리했지만 이번 판결이 중국 등 새로 부상하는 경쟁상대들에 빌미를 줘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WTO 상소기구는 4일(현지시간) 지난해 WTO가 내린 결정을 뒤집고 미국 워싱턴주정부가 보잉사의 신형 항공기 모델 777X 개발과정에서 회사 측에 지급한 보조금이 합법이라고 판단했다. WTO 상소기구는 WTO 분쟁 최종심을 담당하므로 이번 결정으로 번복되지 않는다. 이번 결정을 보잉은 “깨끗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WTO는 지난해 11월 보잉사가 777X를 개발하면서 미국산 원자재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주정부로부터 감세 혜택을 받은 것이 불공정거래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유럽연합(EU)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를 불법행위로 판정한 바 있다. 당시 EU는 2년간 보잉사가 777X 기종 생산과 관련해 80억달러가 넘는 불법 보조금을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보잉사는 정부 보조금이 1억달러에 불과하다고 맞서면서 그해 12월 항소했다.


이후 지난 6월9일 항소패널은 워싱턴주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보잉사에 감세 등으로 사실상 3억2,5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 점은 인정되나 이 보조금이 에어버스 판매감소와 가격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EU의 주장은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결국 최종심에까지 작용했다. 마이클 루틱 WTO 법률자문관은 “에어버스와 EU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기각됐다”며 “777X 기종을 둘러싼 보조금 분쟁은 미국의 승리로 종결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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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결정을 보잉의 최종적 승리로 보기에는 이르다. 13년째 보잉과 여러 건의 보조금 분쟁을 이어온 에어버스는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며 다른 분쟁에서 보잉에 설욕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2004년 미국 측에서 EU가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WTO에 제소한 것을 시작으로 막이 오른 양측 간 보조금 분쟁은 거듭되는 맞제소와 항소로 13년째 이어졌으며 당장 올해 말과 내년에도 또 다른 WTO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한편 이번 판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WTO가 기존 결정을 미국에 유리하게 번복했다는 점 때문이다. 싱가포르 방송사인 채널뉴스아시아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무시하겠다고 암시해왔다”며 “WTO의 분쟁조정 시스템이 전에 없던 감시체제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압박이 WTO의 판단을 뒤집는 데 영향을 줬다는 점을 시사하는 진단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WTO의 이번 결정이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항공굴기’를 꿈꾸는 중국이 자국 기업들에 유사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10년 안에 3,200대의 항공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중국이 불법 보조금을 쏟아부을 경우 미국과 보잉사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영국 BBC방송은 “이 경우 보잉과 에어버스는 중국이 자신들의 최대 시장이라는 점을 의식해 WTO에 제소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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