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뜻? 없습니다.”
다채로운 색이 상징하는 의미는 ‘없다’고 답했다. 사람 혹은 반려동물의 이름인 성 싶은 작품 제목에 대해서도 “전산상의 구분을 위해 임의로 붙였을 뿐”이라며 그 역시 별 뜻 없다고 했다. 프랑스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베르나르 프리츠(68)다. 그가 다음 달 21일까지 종로구 팔판길 갤러리 페로탕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위해 방한했다. 지난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90여명 작가 중 유일한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미술의 자존심을 지켰던 그다. 이후로도 프리츠는 파리와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 중이고 세계 각지의 미술관들이 그를 초청해 전시를 열고 있다.
작가는 다정하면서도 신중한 표정으로 질문에 귀기울였지만 대부분의 대답은 “별 뜻 없다(No Meaning)”였다. 그러나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가 펼쳐놓은 색들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다양하게 읽힌다. 보통은 작품의 주제와 방향을 정한 후 그림을 그린다. 이를테면 사과를 그려야겠다, 빨간 사과가 아닌 초록색 풋사과를 그려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40여 년 이어온 “결정 내린 채 시작하기 싫다”는 고집이 그의 그림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뭘 그리겠다’ 결정내리지 않고 붓터치 등 규칙만 정하고 시작
“그림에 전할 메시지 담으면 욕심..주변세계에 대한 이해 제공할 뿐”
대신 프리츠는 ‘게임의 룰’을 정하듯 형태와 색의 진행 등 규칙을 먼저 정한다. 감정 섞인 자의적 선택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배제하려는 의도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되, 겹쳐진 색이 보이려면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음 색을 칠해야하기 때문에 작업과정은 분주하다. 놀랍게도 결과물로 태어난 그림은 우연이 빚어낸 듯한 운명 같은 색의 조화를 보여준다. 작가는 “색깔에는 관심없다”면서 “그 보다는 ‘캔버스 위의 물감’이라는 개념이나 그림이 전하는 감정에 더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사용한 색들은 베틀로 색색의 옷감을 짜듯 미묘하게 뒤섞인다. 씨실과 날실을 교차시키는 베틀 작업은 지극히 기계적이고 반복적이지만 그 결과물에서는 인간적 숨결이 느껴지니 둘은 닮았다. 특히 이번 전시 출품작 대부분은 수직 수평이 교차하는 격자 작업들이다. 세로로 색을 칠하고 그 붓질이 끝나는 지점을 하나의 수평선으로 맞추는 식으로 층을 만든 작품은 빽빽하게 꽂힌 책장 같다. 큼직한 붓질이 가로세로 엇갈린 그림은 흡사 부드러운 커튼처럼 느껴진다. 그 너머로 하늘이 보이는 듯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그가 답했다.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작가의 역할이 아니죠. 작가는 그저 드러내고 그를 통해 우리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림이란 말이 아니라 비유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