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열린 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핵심 정책 토론회. 이곳에 참석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양날개를 축으로 성장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극화 해소 정책으로 서민들의 소득을 높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혁신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양날개론’은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이 실시한 긴급 설문에서 20명의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양날개론은 말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20명 모두가 ‘소득주도성장은 잘 보이지만 혁신성장 정책은 미흡하다’는 데 만장일치를 이뤘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단적으로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는 복지·분배 정책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득주도성장 분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재정 지원, 아동수당 신설과 기초생활수급제도 확대,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과 근로장려금(EITC) 인상,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까지 굵직한 대책 수십개가 쏟아져나왔지만 혁신성장 분야에서는 마땅히 눈에 띄는 정책이 없다. 4차산업혁명을 지원하기 위한 대통령직속위원회는 정권 초부터 만들겠다고 했지만 아직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의 일부는 “아직 정권 초이니 기다려보자”는 입장이었지만 대부분은 “마냥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전 현대경제연구원장(현 숙명여대 교수)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경제지표들이 좋아서인데 세계 경제 호조 등 운이 좋은 측면이 있다”며 “지금처럼 소득주도성장만 추진해서는 1년 안에 각종 부작용이 불거져 나올 것이고 그때 대처하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외교·안보 쪽 불안이 가중되면 한순간에 ‘시스템적 리스크’가 닥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기업 활동을 어렵게 하는 정책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줄을 이었다. ‘성장은 결국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성장을 주도해야 할 주역인 기업을 옥죄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윤창현 전 금융연구원장(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은 “한마디로 채찍만 있고 당근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통신료 인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대부분 정책이 기업들의 이익을 줄이고 비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 역시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그나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졌다는 원전의 경우 탈원전 이슈로 밀어붙여서 산업 경쟁력을 오히려 도태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세돈 교수는 “국가는 경제 주체들을 다독이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기업을 옥죄거나 몰아세우는 인상을 주면 ‘우리가 세금을 얼마나 냈는데’ 하면서 기업들을 밖으로 내모는 꼴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과도한 기업 옥죄기에 민간 현장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업들을 만나 보면 사기와 의욕이 너무 떨어져 있어 올해 경제성장률 3%를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중소기업들마저 현 정부가 우리를 적대시한다고 생각하는 곳이 적지 않더라”라고 전했다. 홍 전 장관은 “경제는 결국 ‘심리’이기 때문에 정부가 기업가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게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인의 기를 살리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결국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빅데이터나 드론·자율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산업에 대한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야 한다”며 “미국의 경우도 지난해 드론 산업에서 자동화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기술 개발 등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노동 정책에서는 노사 간 타협을 이룰 수 있게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현 성균관대 석좌교수)은 “노사정 협력 체제를 통해 노사 대타협을 이뤄낸 독일의 모범 사례를 잘 벤치마킹해 노사가 대립하기보다 서로 출혈을 줄이며 타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