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은 한국 가수들이 그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해외로 떠나 ‘버스킹’이라고 불리는 길거리 공연을 펼치는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지난 10일 방송된 마지막 회에서는 가수 이소라, 윤도현, 유희열, 방송인 노홍철의 버스킹 여정이 잔잔한 울림을 안기며 막을 내렸다.
지난 6월, 생애 첫 해외 버스킹에 나선 네 사람은 ‘비긴어스’라는 팀명으로 불렸다. 이들의 첫 시작은 버스킹의 성지 아일랜드였다. 특히 더블린은 영화 ‘원스’, ‘싱스트리트’ 등 유명 음악 영화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곳. 유희열과 윤도현은 ‘원스’에 등장한 악기점 ‘월트 뮤직’에서 즉흥적으로 원스 주제곡 ‘falling slowly’ 연주를 하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로도 귀가 호강하는 감미로운 무대들이 이어졌다. 비긴어스는 세계적인 록 밴드 U2, 레드핫칠리페퍼스 등이 공연을 한 슬래인 캐슬에서 ‘Falling Slowly’, U2의 ‘With or Without you’를 자신들만의 색깔을 담아 잔잔하게 연주했다. 이소라는 자신의 대표곡인 ‘바람이 분다’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겼다.
비긴어스의 도전이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들이지만 해외에서는 생소한 환경에도 적응해야 했다. 아일랜드 골웨이 시내의 작은 펍에서 한 첫 공연이 그랬다. 마이크도 앰프도 없는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해야 하는 익숙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윤도현이 바람잡이 역할을 자처해 무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를 떠나 향한 곳은 비틀즈의 나라 영국이었다. 본격적인 버스킹 공연 외에도 장소를 이동하고 리허설을 준비하면서 비긴어스가 흥얼거리는 모든 멜로디들이 하나의 무대가 됐다. 아일랜드 버스킹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더욱 붙었다. 소도시만 다니던 그들은 대도시 리버풀에서도 버스킹을 하기로 결정했다.
첫 펍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다. 이소라는 자신이 주로 부르는 조용한 노래가 관객들에게 들릴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러나 윤도현이 유희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박하사탕’으로 포문을 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소라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부르며 좋은 음악은 어디서든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아일랜드에서 슬래인 캐슬을 무대로 서정적인 공연을 보여줬다면, 영국 리버풀에서는 비틀즈가 활동했던 캐번 클럽을 찾아 추억 속의 무대를 재현했다. 캐번 클럽은 비틀즈가 무명시절 300여 차례 공연을 했던 곳. 비틀즈 팬들의 성지답게 비긴어스도 비틀즈의 노래들로 무대를 채웠다. ‘Come Together’부터 ‘Across the Universe’, ‘Imagine’까지. 황홀한 시간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영국을 거쳐 가며 노홍철의 존재 이유도 더욱 명확해졌다. 제작발표회 당시만 해도 뮤지션 조합에 노홍철이 과연 어울릴까 하는 우려가 컸던 상황. 노홍철은 이소라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살뜰히 챙기는 것을 넘어, 공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타악기 카혼을 배우기도 했다. 비록 조금씩이지만 음악적 눈이 트이는 것을 모두가 지켜봤다.
브릿팝의 도시 맨체스터에서는 국경을 넘어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비긴어스 멤버들이 방문할 당시 맨체스터는 지난 5월 일어난 공연장 테러 사건으로 희생자에 대한 추모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이들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존레논의 ‘Imagine’을 불렀다. 윤도현은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아픔에 공감하기도.
그동안 쌓아온 버스킹 여정이 스위스에서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비긴어스는 세계 3대 재즈 페스티벌로 꼽히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밥 딜런, 레이 찰스, 롤링 스톤즈, 어셔 등 세계적인 유명 뮤지션들이 참여해 화제가 된 음악 축제인 만큼 드러머 이상민, 베이시스트 황호규, 기타리스트 허준을 추가해 더욱 완성도 높은 공연을 펼쳤다.
드디어 국내 매체가 아닌 해외 매체에서도 비긴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불어로 발행되는 일간지 중 가장 큰 신문인 ‘Le matin(르 마땅)’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스위스 재즈 페스티벌까지 서게 된 비긴어스에 관심을 보이고 인터뷰 요청한 것이다. 좋은 음악은 언어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마지막 버스킹은 프랑스 샤모니에서 펼쳐졌다. 비긴어스는 “우리가 돈이 없지 곡이 없냐”며 웃음 섞인 농담을 하고는 ‘우리 노래’로 마지막 버스킹을 채우자고 다짐했다. 최초로 팝이 섞이지 않은 가요로만 선곡표가 꾸며졌다. 마지막의 마지막은 뮤지션 세 사람이 처음 음악을 할 때부터 좋아했던 곡인 들국화의 ‘축복합니다’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소라의 ‘트랙(Track)3’, 윤도현의 ‘꿈꾸는 소녀 Two’ 외에도 이소라와 윤도현이 함께 부른 ‘그대 안의 블루’, 윤도현과 노홍철이 함께 한 ‘꽃비’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축복합니다’는 어느 버스킹보다 특별했다. 노홍철까지 포함한 네 명이서 최초로 호흡을 맞췄다. 프랑스에서 울려 퍼지는 들국화의 선율과 비긴어스의 목소리가 감동적이었다.
초반부터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비긴어게인’인지라, 뮤지션 세 사람의 개성 역시 매우 뚜렷했다. 이소라는 섬세한 뮤지션의 전형이었다. 때로는 낯선 환경에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목소리로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예상외의 귀여운 매력과 노홍철과의 케미로 예능적인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윤도현과 유희열은 없어서는 안 될 멤버였다. 윤도현은 록 스피릿 넘치는 가수답게 어디서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비긴어스를 이끌었다. 대도시의 길거리, 펍, 클럽 등에서 이소라가 머뭇거릴때 앞에 나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윤도현이었다. 버스킹에 맞게 여러 노래를 변형하고 끊임없이 노래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프로 뮤지션의 열정이 느껴졌다.
유희열 역시 차분한 진행과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로 비긴어스의 여정을 무탈하게 이끌어갔다. 노홍철이 갑자기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며 이소라에게 노래를 부탁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인터뷰 하는 시간을 쪼개서 악보를 만들고 연주했다. 어느 음색에든 자연스럽게 덧입혀지는 그의 피아노 선율처럼 어디에 녹아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편안함이 마음을 이끌었다.
노홍철은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방송에 몇 분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처음에는 갸웃 거릴만한 캐스팅이었다. 그러나 윤도현이 “아무리 뮤지션 세 사람에게 MC 경력이 있다지만 노홍철 없이 세 사람만 있었다면 숨을 못 쉬었을 거다”라고 말한 것처럼 섬세하고 예민한 뮤지션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데 가장 큰 몫을 했다.
‘비긴어게인’의 성공적인 버스킹을 완성한 또 다른 주역들이 있다. 바로 뮤지션들이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 제작진이다. 이들은 예능적 재미를 위해 경쟁이나 갈등 같은 MSG를 첨가하지 않은 착하고 편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일요일 밤을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영국, 스위스, 프랑스까지 4개국. 아일랜드에서 조심스레 시작했던 ‘Falling Slowly’에서 프랑스에서 완벽한 마지막을 장식한 ‘축복합니다’까지.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머리싸움 없이 온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던 ‘비긴어게인’의 시즌2를 기대해본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