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여배우가 말한 여배우의 삶…문소리 "픽션이지만 진심을 담았죠"

■ '여배우는 오늘도'로 감독 데뷔한 문소리



‘제대로 영화 공부해보자’ 다짐에

대학원때 만든 단편 엮어 재구성


스스로 삶 돌아보며 영화계 성찰



해가 기울기 시작한 오후 5시쯤이었다. 1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건물 옥상, 붉은 기가 도는 하늘 아래 하늘색 스트라이프 원피스를 입은, 눈매가 밤톨처럼 또렷하고 동그란 배우 문소리(사진), 아니 문소리 감독이 노트북 건너에 앉았다. 대답을 생각할 때는 눈을 내리깔고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고 답을 할 때는 예의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문소리는 감독 데뷔작인 ‘여배우는 오늘도’ 시사회에서 이창동 감독에게 ‘자신이 예쁘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변을 전한 적이 있다. “소리야 너는 충분히 예쁘다. 그런데 다른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예뻐서 그렇다.” 그 말이 그 당시 문소리에게 위로가 됐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문소리는 충분히 예쁘다. 매일의 족적을 쌓아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영화인만의 아우라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40대 중견 여배우를 대표하는 문소리, 나아가 베니스, 스위스 로카르노 등 해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영화학도를 키워내는 교수(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로, 이번에는 감독으로 차곡차곡 ‘문소리 월드’를 쌓아가고 있는 그에게선 형용하기 어려운 건강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런 그에게도 약한 지점이 하나 발견됐다.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어색한 미소가 ‘피식’하고 흘러나온다. 감독보다는 배우로 살고 싶은 욕심도 묻어있다. 그래도 18년차 배우인 문소리가 각본, 감독, 주연까지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개봉(14일)을 앞두고 긴장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프로덕션 살림을 책임지는 감독의 모습이다.

“2011년 딸 연두를 낳은 뒤 6개월만에 모유 수유도 끊고 영화를 찍었어요. ‘스파이’ ‘관능의 법칙’ 모두 당시 작품이죠. 근데, 그 뒤로 작품 제안이 뜸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일도 고됐고 내가 영화를 계속 해야 하는데 과연 영화를 얼마나 잘 아는지, 사랑하는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나 자신을 점검해보기 위해 제대로 영화 공부를 해보자 생각했어요. 영화를 가장 사랑한 감독으로 꼽히는 트뤼포가 영화를 사랑하는 마지막 단계는 직접 만드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만들고 보니 시사회 반응이 너무 좋으면 일반 관객들의 기대치가 너무 올라갈까봐 걱정, 개봉관을 잡기 힘들어서도 걱정, 배우들이 바빠 인사를 다닐 수 없는 것도 걱정, 모든 게 걱정이네요.”

배우 문소리 인터뷰/권욱기자



실제 주인공이 여배우 문소리인 이번 영화는 2013년 입학한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과정 중 제작한 여배우’(2014) ‘여배우는 오늘도’(2015), ‘최고의 감독’(2015) 등 세 편의 단편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연기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영화 생각뿐인 문소리지만 녹이 슬지 않기 위해 기름칠을 하듯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꾸는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영화 공부를 시작했더니 영화를 찍게 됐고 스스로의 고민을 담아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일종의 ‘졸업 작품’이지만 당장 개봉할 영화를 만드는 심정으로 진지하게 찍었다. 대신 다른 독립영화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끊임없이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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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 영화를 배워보겠다고 대학원 졸업작품을 쫓아다니며 출연했어요. 한 해 출연한 작품 7편이나 됐죠. 그만큼 빚진 게 많다 보니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들의 기회를 뺏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제에 출품하긴 했지만 다른 독립영화에 폐가 되지 않게 경쟁작으론 내지 않았죠. 그들에게 가야 할 몫이니까요.”

“감독의 중압감 체험하니 놀라워

개봉관 잡기 정말 쉽지않네요”



정식 개봉까지 고민도 많았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일부 영화제에서 틈틈이 소개하긴 했지만 정식 개봉까진 상당한 공이 드는 작업인 탓이다. 하지만 고생한 배우와 스태프들을 위해서라도 정식 개봉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주변 사람들이 용기를 북돋워 주길래 저예산영화 개봉 지원 공모를 해봤어요. 그런데 덜컥 된 거죠. 이제는 빼도 박도 못 하게 개봉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개봉관 잡기가 정말 쉽지 않네요. 다들 ‘천하의 문소리도 개봉관 못 잡느냐’고 하는데 말도 마세요. 초저예산 독립영화에 문소리 타이틀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시기에 작업했지만 극 중 주인공인 여배우 문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실타래가 얽혀 애초부터 하나인 양 오밀조밀 엮인다. ‘여배우’가 여배우 문소리의 삶을 집중적으로 비춘다면 ‘여배우는 오늘도’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을 조명하고, ‘최고의 감독’은 자기 세계를 구축한 감독, 나아가 영화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은 이야기이자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 과정을 담았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몸담은 영화계, 에술인을 통찰한 셈이다. “어디까지 진실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내용은 픽션이지만 100% 진심이에요. 그런데 트레일러를 본 여배우들이 모두 ‘내 얘기 같다’고 연락이 오더군요. 일반 관객들은 웃겠지만 여배우들에겐 ‘눈물 콧물 뺄 각오하고 오라’고 했죠.”

이번 작품 촬영 후 또 한 가지 큰 소득은 감독의 세계를 제대로 보게 됐다는 점이다. “연출에는 뜻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영화감독들이 매 순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이 중압감을 어떻게 견디는지 놀라웠어요. 저야 텃밭 가꾸는 심정, 가내 수공업 하는 심정으로 찍었다지만 제가 함께 했던 감독님들은 그보다 더한 중압감을 느낀다는 거잖아요. 내 삶에 영향을 준 감독님들에게 정말 감사해야겠다 싶고. 연민의 마음도 들더라고요.”

극 중에선 자신의 외모를 ‘평범하다’고 표현하며 자조하고 매니저에게 자신이 매력적인지를 물으며 윽박지르는 부분이 나오는데, 다소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이긴 하지만 자신을 향한 유머는 자기객관화가 끝났을 때나 가능하다. 현실의 문소리는 ‘진지하게’ 평범함과 보통의 삶에서 힘을 얻는다.

“저는 평범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믿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큰 꿈을 꿔야 한다고 배우고 큰 걸 이루면 더 큰 행복이 온다고 믿지만 누구나 인생에 오르내림이 있잖아요. 굴곡 속에서도 일상과 평범함이 주는 작은 행복을 제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거죠. 이런 고민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는 것 것이고 이를 담은 영화니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사진=권욱기자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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