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다 내 랩을 싫어할 거야, 다 나를 우습게보고 있어, 힙합 마니아들도 나를 래퍼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이러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인해 슬리피는 오랫동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고. 프로그램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한 개코 역시 ‘본인 스스로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얘기’를 그에게 건넬 정도였다.
비록 ‘쇼미더머니6’를 통해 높은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해다 하더라도, 슬리피에게 이 프로그램이 남다른 의미로 남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신감과 자존감을 찾아줬다는 데 있다.
“개코 형이 우리들이나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해줬는데 그때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냥 좋게 얘기 해 준 거겠지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무대를 끝나고 들어갔을 때 다른 참가자들이 환호를 해주고, 좋은 얘기를 해주니까 거기서 제 랩이나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찾게 되더라고요. 스스로를 가둬 두던 벽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부순 게 가장 크게 얻은 거라고 할 수 있죠”
MBC 예능 ‘진짜사나이’에서 보여준 악바리 근성처럼, 한 번 시작한 것에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슬리피. 1등을 못해도 시작했으면 끝은 봐야한다는 게 그의 성격이다. 음악 역시 그랬다. 성적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놓은 적은 없었다. 여기에는 도태되지 않으려는 슬리피의 숨은 노력도 있었다.
“아무리 경력이 오래 됐어도 랩 경연 프로그램에서 랩을 못하면 떨어지는 건 당연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시는 분들이 많이는 없겠지만, 저는 계속 랩 스타일이 바뀌었어요. 음악도 많이 들으려고 했고, 랩도 계속 시대를 맞춰가려고 했죠. 저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라 해도 저보다 잘하는 게 있으면 받아들이고 바꾸려고 했어요. 저는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만들어졌거든요. 물론 어떤 분들은 색깔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도 동생들에게 랩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자신도 대중들도 그의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한 겹 걷어낸 만큼, 음악을 하는 래퍼 슬리피의 면모를 유감없이 펼쳐 보이겠다는 각오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이거다!’ 할 수 있는 타이틀이 나올 때까지 계속 곡 작업을 해 나가고 있는 언터쳐블로서 뿐만 아니라, 슬리피는 솔로 음반으로도 쉬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지난 10일에 발표된 ‘맘대로’다. 그루비한 리듬과 묵직한 비트가 인상적인 트랩 넘버인 이 곡에도 슬리피는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는 래퍼로서의 삶과 음악을 즐기겠다는 마음을 녹여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결혼 했어요’에서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센 음악을 선보일 수는 없는 것처럼, 이전까지 시기나 이미지 때문에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못했던 것들이 있어요. 단순하게 제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멋지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 했어요”
이 앨범을 기점으로 올 11월, 늦어도 12월 까지 또 하나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어 내년 초중반까지는 무조건 슬리피 1집을 발매해 보는 것이 목표라는 그의 바람은 차근차근 현실화 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처음의 열정의 잃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앨범 작업에 매진해보면서 처음의 마음가짐도 되찾고 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예능과 음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나가고 있는 슬리피는 새 앨범을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많은 대중들에게 어떤 래퍼로 기억되고 싶을까.
“이번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동생들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제가 어떤 음악을 했으면 좋겠냐고.
그때마다 대부분 그들과 제 생각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가령 일리어네어는 일리어네어만의 색깔이 있고, 그레이나 로꼬는 또 그들만의 색깔이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예능을 겸하고 음악도 인정받으면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걸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음원 성적이 동반되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 우선은 동생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실력 있는, 트렌디한 래퍼로 남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