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도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 영국·일본 등이 새로운 규제 마련에 착수했고 국내외 금융계 인사들이 잇따라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데 가세하고 있다.
17일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가상화폐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버블”이라며 “이에 대한 투자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근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가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경고음을 낸 적이 있지만 국내 시중은행장이 가상화폐 거래 위험성에 대해 직접 우려를 표한 것은 처음이다. 다이먼 CEO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은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광풍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가상화폐에 손대는 직원은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400여년 전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알뿌리에 대한 투기 열풍이 불어 알뿌리 가격이 집값을 뛰어넘을 정도로 폭등했다가 결국 거품이 꺼져 국가 경제가 휘청일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다.
이 행장은 비트코인에 대해 본질적 측면에서 취약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태환(兌換)도, 지급보증도 되지 않는 화폐를 신뢰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화폐는 원래 교환 활동에서 재화 및 서비스와 교환되는 물건이 기원이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금이나 은이 화폐로 쓰이다가 편의성을 위해 액면가만큼 금이나 은으로 바꿔주는 태환화폐가 등장했고 이어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증하는 불태환화폐로 화폐의 역사가 진화해왔는데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는 내재가치가 없고 보증기관도 없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시장에 직접 뛰어들 의사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는 일본의 일부 증권사 등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설립하는 등 거래 시장에 뛰어들 조짐을 보이는 것과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도 ‘위비코인’과 같은 전자화폐 상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원화와 교환이 가능한 상품권에 가깝다”며 “신뢰가 불가능한 비트코인과는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가치가 불안정하다는 점도 가상화폐의 단점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지난 2013년 출범 당시 가격이 13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같은 해 1,200달러선까지 올랐다가 이듬해인 2014년 거래소 해킹 사건으로 140달러선까지 주저앉기도 했다. 특히 증시처럼 상·하한 폭이 정해져 있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씩 가격이 급등락하는 등 롤러코스터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행장의 이 같은 발언은 국내의 하루 가상화폐 거래대금이 코스닥을 능가할 정도로 광풍이 불고 있는데다 점점 투기 성향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한 사전 경고로도 해석된다. 이 행장은 그러나 가상화폐의 기반이 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전 세계가 비트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고도의 보안성 덕분이며 만약 각국 중앙은행이 이 기술을 활용해 직접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단계가 된다면 전자화폐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게 이 행장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