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외교안보라인 자중지란]파벌 갈등에 靑 컨트롤타워 역할 못해...사공 많고 특보가 '상왕'

노무현정부 시절 자주파 인물, 동맹·강경파들과 불협화음

사드서 레드라인·전술핵까지 잇단 대치...국민 불안 가중

압박·대화 등 대북 메시지 시점·톤 등 세심한 조율 실패

"정의용 안보실장 장악력 떨어져" 靑안팎 우려 목소리도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대통령 부재 중 대립각을 세우는 갈등 양상으로 치닫자 정부 출범 초기부터 예상됐던 내부 갈등이 결국 폭발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을 앞두고도 조율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며 안보 우려를 키웠던 주요 인사들이 최근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 이후 위기감이 더 고조된 가운데 혼연일체는커녕 자중지란을 일으켜 되레 대국민 불안감을 키운다는 비판이다.

외교안보 라인이 계속 삐걱거리는 이유는 뭘까.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정권이 첫발을 떼는 단계에서부터 아슬아슬한 모습을 이어왔다. 특히 외교안보 라인에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했던 ‘자주파’ 성향의 인물들이 잇따라 합류하면서부터 이 같은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 시작했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교수를 비롯해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서주석 국방부 차관, 다자외교를 중시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북대화 전문가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새로 들어온 외교안보 핵심인물들이 4강 중심 외교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강경파와 입을 맞추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교안보 라인의 서로 다른 목소리는 사드 배치 문제와 한미 정상회담,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대북 문제가 복잡한 양상을 띨수록 더 많이 쏟아져 나왔다. 6월 문정인 특보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사드가 해결되지 않아 깨진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청와대는 “문 특보의 발언이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엄중하게 전달했다”고 ‘옐로카드’를 보냈다.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명 직후 교수 시절의 처신 논란으로 낙마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청와대 안팎에서는 외교안보 라인에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잠잠한가 싶었던 논란은 최근 다시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는 “(북한이) 레드라인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한 반면 31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해 재점화된 논란은 전술핵에 대한 입장차에서 정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14일 CNN 인터뷰에서 “우리가 전술핵을 다시 반입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4일 송 장관이 국회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할 뜻을 시사했는데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를 뒤집은 것이다. 18일에는 송 장관이 문 특보를 직접 비판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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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제 기능을 못하는 점도 외교안보 라인이 파열음을 내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압박과 대화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천명하고 출범한 정권인 만큼 정책의 큰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메시지를 보낼 시점, 메시지 톤 등을 청와대가 세심하게 조율해 일관된 신호를 줘야 하는데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문 특보의 발언까지 제어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적어도 전술핵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차원에서 입장 정리를 하고 이를 모든 정부부처에 통보하는 등의 과정이 있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구체적으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주도권을 쥐고 외교안보 이슈를 결정해야 하는데 다른 비서진이 오히려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의 경력이 통상에 국한된 것도 문제다. 정 실장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을 지내는 등 ‘통상통’이지만 안보 쪽은 취약해 임명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정 실장이 안보 쪽에 전문성이 없으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이에 따라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주도권을 못 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외교안보와 관련해 ‘사공’이 많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1실장·2차장·8비서관 체제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차관급인 차장이 한 명 늘었고 비서관은 3명이 증가했다. 직원 정원도 22명에서 43명으로 20명 이상 불어났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직원이 많으면 장점도 있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의견을 모을 시간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며 “비서관 중 국방개혁비서관 등을 신설했는데 업무 분장도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청와대 밖을 보면 외교안보 특보 자리가 이번 정권 들어 새로 생겨났으며 국방부 장관,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나서 대북 관련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외교안보 핵심 라인의 자중지란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외교안보 실무급에서도 해묵은 갈등이 표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외교부의 경우 적폐청산과 옛 정권과의 선 긋기 차원에서 인사 및 조직쇄신 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할 윗선의 교통정리가 제대로 안 되면서 실무급은 당면과제에 손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의 현안을 다뤄야 할 동북아국장 자리는 강 장관의 첫 인사를 앞두고 일본라인(재팬스쿨) 독점 문제가 내부에서 지적되기도 했다. 재팬스쿨뿐 아니라 북미라인(워싱턴스쿨)도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그간 이들이 중요한 자리를 지속적으로 꿰차면서 외교부의 순혈·폐쇄주의를 고질로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정영현·이태규기자 yhchung@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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