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블록체인 규제 집착 땐 시장 놓친다"

[본지·율촌주최 ‘아시아 미래 핀테크 포럼]

'샌드박스' 개념 빨리 적용해

문제 생기면 그 때 규제해야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율촌이 공동으로 19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주최한 ‘아시아 미래 핀테크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포럼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율촌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율촌이 공동으로 19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주최한 ‘아시아 미래 핀테크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포럼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율촌




전 세계가 블록체인 기술 개발과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산업혁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의 규제 완화 속도가 더뎌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글로벌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듯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중삼중의 규제로 모처럼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다.


19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율촌의 공동주최로 열린 ‘제6회 아시아 미래 핀테크포럼’에서 인호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블록체인:4차 산업혁명의 국가 핵심 인프라’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개인컴퓨터(PC)가 처음 나왔을 때 윈도가, 인터넷 세상이 도래했을 때 구글이, 인터넷에서 다시 모바일로 흐름이 바뀌면서 안드로이드가 생태계를 장악했다”며 “이제는 블록체인 업체가 전 세계를 장악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인 교수는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호주·영국 등 주요 선진국이 지난해부터 활발하게 블록체인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국가 차원에서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며 “블록체인을 기존의 규제 틀로만 바라보고 푸는 데 주저하면 해외 (블록체인) 업체에 종속당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의 경우 정부 주도로 지난해 11월 민관 중심의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관료는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는 게 인 교수의 주장이다.

인 교수에 따르면 정부가 규제개선에 머뭇거리는 사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블록체인 기술 선점을 위한 총성 없는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활용 기술 분야 중 하나인 인공지능(AI)의 경우 미국 IBM의 ‘왓슨’이 의사 대신 의료행위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각종 규제에 묶여 불법으로 취급되고 있다. 인 교수는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은 물론 의료법에도 발목이 잡혀 AI가 환자를 진단·처방하는 일이 불법”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실제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료행위와 의료기기 등은 의료법과 의료기기법 등 관련법을 따라야 하며 대부분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말 ‘AI·빅데이터를 적용한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AI인 ‘왓슨’은 의료기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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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교수는 “오는 2023년에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을 통해 나올 것”이라며 “블록체인의 응용 분야는 디지털콘텐츠 유통, 인증 서비스, 전자상거래, 부동산거래, 주식거래 등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블록체인 기술 개발과 함께 이를 기존의 다양한 산업과 접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 교수는 “블록체인은 해킹을 통한 위변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절대 변하면 안 되는 온라인 대선 투표나 개인정보·의료정보를 활용한 원격진료 정보 등을 관리하는 데 최적”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대선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만들면 A후보에게 표를 줬는데 B에게 가는 등의 부정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인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다양한 산업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산업에 최적화된 정부의 규제 틀을 ‘스마트한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의 기초에 해당하는 가상화폐의 경우 정부가 어떻게 규제하느냐에 따라 세계 시장의 중심이 될 수도 있고 완전히 변방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며 “기술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아무리 규제를 빨리 만들어도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만큼 선제적 규제보다는 꼼꼼한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규제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 교수는 5월 유럽의회가 블록체인과 관련해 정책당국이 블록체인의 기술적 한계나 부작용에 집중하기보다 혁신의 과실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두는 ‘불간섭주의’ 정책을 기본 기조로 권장사항으로 채택한 것을 우리 정부가 참고할 좋은 사례로 꼽았다.

인 교수는 구체적으로 블록체인 규제 설계의 접근방법을 제시했다. 인 교수는 “어떤 규제 강도가 바람직할지, 블록체인 자체를 규제한다면 어떤 유형이 핵심 규제가 돼야 하는지, 기존 규제와 충돌하는 부분이 무엇이고 새로 도입해야 할 규제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조속히 적용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발견된 문제점을 토대로 규제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 이재욱 율촌 변호사는 ‘가상화폐 법적 지위 및 거래소의 법적 문제점’을 내용으로 한 주제발표에서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하루 거래대금이 코스닥 거래대금과 맞먹을 정도로 성숙해졌지만 관련법 부재로 거래소가 통신판매업자로 등록돼 각종 사건 사고에 노출돼 있고 피해자 구제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코빗이나 빗썸·코인원 등 국내 가상화폐거래소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아래 온라인쇼핑몰과 같은 통신판매업자로 등록돼 있다”며 “금융회사처럼 고도의 보안유지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돼 해킹 등 각종 사고에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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