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울시 1세대 헌책방도 패소…문 닫을 위기

서울시 미래유산까지 지정됐지만

"월세 2배 내라"는 건물주에 패소

재판장 “현행법상 어쩔 수 없어…유감스럽게 생각”

21일 한 서울시민이 45년 역사의 1세대 헌책방인 서울 서대문구 ‘공씨 책방’ 앞을 지나치고 있다./송은석기자21일 한 서울시민이 45년 역사의 1세대 헌책방인 서울 서대문구 ‘공씨 책방’ 앞을 지나치고 있다./송은석기자


서울시 1세대 헌책방이었던 서울시 서대문구의 공씨책방이 명도소송에서 패해 끝내 문을 닫게 됐다. 법원은 1층만 퇴거하라고 주문했지만 1층에 보유한 책이 수만 권이 넘어 사실상 이사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서부지법 민사5단독 황보승혁 판사는 입주 건물주인 전모(52)씨가 공씨책방 주인 장화민(60)씨를 상대로 낸 건물 1층 부동산 명도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황보 판사는 “피고(공씨책방)는 건물 1층을 원고(건물주)에게 인도하고 9월 5일 기준 연체차임 706만 1,750원과 지연손해금인 9월6일부터 인도일까지 월 145만1000원을 부당이득금으로 계산해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공씨 책방이 현 영업장인 1층을 건물주에게 넘겨줄 뿐만 아니라 계약 해지일을 기준으로 이사 가는 날까지의 지연손해금까지 합해 총 850여만원을 건물주에게 지불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공씨책방 측은 지난 1년 간의 소송에서 △월세가 연체되지 않은 임대인은 5년 계약갱신청구권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 △1·2층 중 2층 입주일인 2015년 10월을 계약 기간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점 △서울시 미래유산이라는 점 세 가지를 중심으로 책방을 지켜달라고 변호해 왔다.


그러나 황보 판사는 “공씨책방 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건물 거절 통지 후부터 월세를 전액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걸림돌이 됐다. 책방 주인 장씨는 지난해 8월 26일 임대인이 임대차계약갱신거절을 통보한 뒤부터 계약서상 월세인 130만3,000원 중 건물손실예비금인 80만원을 제하고 50만원만을 지불해 왔다. 황보 판사는 이를 밀린 월세로 간주해 장씨의 계약갱신청구권이 없다고 봤다. 상가임대차보호법 10조는 임차인이 임대 6개월에서 1개월 전까지 계약갱신을 요청할 수 있지만 3개월 이상 임대료를 연체한 경우엔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없다. 장씨는 “80만원 예비비는 어차피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을 돈이었다”고 주장했지만 황보 판사는 서대문 세무서에 책방 월세가 130만원으로 신고된 점을 들어 이와 같은 주장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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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1세대 헌책방인 ‘공씨책방’ 주인 최성장(71)씨가 21일 책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책을 찾아주고 있다./송은석기자서울 서대문구 1세대 헌책방인 ‘공씨책방’ 주인 최성장(71)씨가 21일 책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책을 찾아주고 있다./송은석기자


황보 판사는 공씨책방이 서울시 미래유산에 해당한다는 부분에 대해 “이 책방의 문화적 가치는 장소 내지 건물과 결부돼 있다기보다 책방이 보유한 서적과 운영자의 해박한 지식, 오랫동안 누적된 단골 고객들의 인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설사 장소 이전하더라도 본질적 문제 침해되진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현행법 형식상으로는 이런 결론밖에는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장으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4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공씨책방은 한때 이문재·정호승 시인 등을 단골로 둔 전국 최대 규모의 헌책방이었다. 1972년 고(故) 공진석씨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문을 연 후 2차례 이사를 거쳐 1995년 서대문구 신촌로에 자리를 잡았다. 임대차 계약 만료를 1개월 앞둔 지난해 8월 건물주는 ‘계약을 지속하지 않겠으니 나가달라’고 통보했고, 지난해 10월 건물을 매입한 새 건물주는 기존 월세의 2배가 넘는 보증금 3000만원과 월세 300만원을 요구했다. 서울시가 민간기업 후원을 통해 임차료 인상분을 지원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지만 건물주 측이 즉시 퇴거를 요구하면서 법정 조정은 결렬됐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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