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게 상징적 역할만 맡기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특별한 역할을 맡길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태용 축구 대표팀 감독에 대한 신임을 재차 밝혔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하루빨리 히딩크 감독과 접촉해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다음달 7일 러시아 원정 평가전 때 히딩크 감독과 구체적인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방향이 정해진 이상 열흘의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정식 직책을 가진 히딩크가 책임감을 갖고 평가전을 지켜보는 것과 지금의 애매한 위치 그대로 관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월드컵 본선을 불과 8개월 앞둔 대표팀으로서도 손해일 수밖에 없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2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히딩크에게 제안할 역할을 정리했다. 김 위원장은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상징적인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확실한 포지션을 주기로 했다. 절대 상징적인 역할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렇다고 특별한 역할을 맡긴다면 자칫 신태용 감독과의 관계에서 옥상옥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는 만큼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했다. ‘상징적인 역할 이상이면서 특별한 역할 이하의’ 자리라면 기술고문 정도의 직책이 유력해 보인다.
히딩크는 지난 14일 네덜란드에서 한국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감독이든 기술고문이든 뭐라고 지칭하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을 맡고 싶어한다는 내용이 히딩크재단을 통해 국내에 알려져 큰 파장이 일자 직접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축구협회는 14일 인터뷰가 나간 뒤 히딩크와 한 차례 e메일을 나눴다. e메일을 통해서는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곧 있을 러시아 원정 평가전에서 직접 만나 구체적인 얘기를 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확실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어떤 역할을 해주실 수 있는지 들어보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신 감독도, 선수들도 이대로 어수선한 상황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히딩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이끈 후 네덜란드리그 PSV에인트호번, 호주·러시아 대표팀, 잉글랜드리그 첼시(임시), 터키 대표팀, 러시아리그 안지, 네덜란드 대표팀, 첼시(임시) 감독을 차례로 거쳤다. 이후 1년 넘게 현장을 떠나 있었지만 그동안 쌓은 경험과 인맥에서 상당 부분 도움을 받을 부분이 있는 것으로 축구협회는 파악하고 있다.
기술위는 ‘대표팀 감독은 신태용’이라는 점을 재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신 감독이 최근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여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 모든 논란의 출발은 히딩크 전 감독을 영입하라는 일부 국민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건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예의가 아니다. 더는 그런 소모적인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신태용호의) 제대로 된 경기력은 내년 3월 A매치 정도가 돼야 나오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후 5월에 소집해 3주간 훈련하는 것이 월드컵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