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이하 LG)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의 유출 가능성 때문에 해외로 나갈 때마다 ‘정부의 기술유출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낸드플래시 기술’을 수출하는 삼성전자(이하 삼성)는 정부에 ‘신고’만 하면 된다. 삼성과 LG 간에 이런 결정적 차이를 만든 요인은 뭘까.
관건은 ‘나랏돈이 지원됐느냐’ 여부다. LG의 OLED 기술은 삼성의 낸드플래시 기술과 달리 국책과제 선정 당시 예산이 조금이라도 투입됐기에 정부의 수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는 자칫 정부 재량권이 남용될 경우 해외투자에 제동이 걸리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기술 모두 ‘국가핵심기술’이고 기술 유출 리스크에 노출돼 있기는 매한가지라는 점에서 정부의 심사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예산 투입되면 기술 유출 가능성도 높다(?)=정부는 과학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을 선정한다. 현재 61개 기술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 핵심기술 가운데 정부가 연구개발(R&D)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하면 기술유출 심사 대상이 된다. 이 경우 해외로 나갈 때마다 매번 심사를 받는다. 국가핵심기술인 LG의 ‘60인치 이상 UD급 투명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및 이를 활용한 IT 융합형 인포테인먼트시스템 개발’ 과제(총 1,263억원)는 2012년 정부 지원과제로 선정됐다. 올 6월에 끝난 이 과제에 들어간 정부 출연금은 410억원가량. 이게 지금 중국에 8세대 OLED 패널 공장을 설립하려던 LG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열댓명으로 구성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전자 전문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기술유출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는데 최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승인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에서 보듯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LG로서는 예산이 들어왔다 해도 크게 수혜를 본 것도 없다. 대부분의 정부 자금은 중소기업 등 협력업체에 우선 지원되는 탓이다. LG 관계자는 “지원과제가 이번 중국 투자와 관련된 백색유기발광소자(WRGB OLED) 기술이 아니라 플라스틱 OLED라 중국 투자와 직접적 연관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심사 대상 선정 기준이 △기술의 고난도 △기술 유출 시 시장 영향력 등과 무관하다는 점. 기준(정부 지원 여부)이 합리적이지 않아 형평성 시비도 나온다. 한 민간 전문가는 “정부가 정말 기술 유출이 우려돼 심사한다면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아예 기업에 모든 걸 맡기는 것도 대안”이라고 꼬집었다.
◇심사 능력 미흡하고 위원회 운영도 주먹구구=기업의 투자 계획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일이지만 심사 제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위원회는 최근 산하에 소위원회를 꾸려 LG OLED에 대한 첫 기술 심사를 했다. 일단 기술 심사 통과를 해야 최종 승인 절차(최장 45일간)로 넘어간다. 그런데 소위원회 위원 중 전문 영역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 적지 않고 기술 심사 기한도 없어 부작용이 많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원회 구성도 정부가 임의로 한다.
위원회를 감독해야 하는 산업부도 문제다. 업계를 다루는 부서, 위원회 구성을 논의하는 부서, 위원회 운영을 보는 부서 등으로 업무가 잘게 나눠져 종합 관리가 어렵다. 시장에서는 기술 간 융복합이 강화되는데 정부는 후진적 조직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볼멘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전자업계의 한 한 고위 임원은 “핵심기술을 논의하면서 부서별로 왔다 갔다 하는 게 답답하다”며 “정부가 기업을 제대로 지원하게끔 제도를 개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