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섬뜩한 악당 연기는 사후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겨줬고, 많은 배우에게 여전히 악역 연기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아이 앰 히스 레저’는 짧지만 불꽃처럼 강렬했던 그의 삶과 열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1979년 호주에서 태어난 히스 레저는 10살 때 동네 극장에서 피터 팬 역할로 처음 무대에 올랐다. 1988년 드라마 출연을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의 길로 접어든 그는 1996년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향했고 3년 뒤 10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할리우드의 신예로 떠오른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그에게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 역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그는 이를 거절한다. 고정적 이미지의 식상한 역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원했기 때문이다.
멜 깁슨과 함께 출연한 ‘패트리어트-늪 속의 여우’로 평단의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그는 이후 ‘스파이더맨’을 비롯해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시켜 주겠다는 제의들을 거부하고 호주로 돌아간다. 그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배우로서 성장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성공에 뒤따를 온갖 기대와 찬사에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다양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던 레저는 리안(李安) 감독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는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게이 카우보이 역을 맡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속으로 삭여내는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다크 나이트’(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에 캐스팅된 그는 신들린 듯한 연기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만한 악당 캐릭터를 완성해 낸다. 그는 이 작품으로 사후 아카데미를 포함해 30개가 넘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의 ‘미친’ 연기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있었다. 그는 “조커 역을 하기 위해 런던의 호텔 방에서 6주 동안 나가지 않고 조커의 일기를 쓰면서 미친 사람처럼 연구했다”고 말한다.
다큐는 그의 가족과 제이크 질렌할, 웨스 벤틀리, 미셸 윌리엄스, 리안 감독 등 그와 함께 작업했던 할리우드 스타들과 감독들을 인터뷰하고 그가 남긴 대표작의 주요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그의 연기 인생 궤적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리안 감독은 다큐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신이 질투한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히스와 함께 작업한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 시간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절친한 친구였던 뮤지션 벤 하퍼는 “이 세상이 품기에는 너무나 큰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