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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쏙 경제-신데렐라맨]반도체만 남은 한국 제조업, 이대로 가다가는...

짐 브래독은 말한다.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주먹을 뻗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출처=네이버영화짐 브래독은 말한다.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주먹을 뻗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출처=네이버영화


“사업은 엎어지고 증권은 바닥치고 우리 모두 무일푼 죽지 못해 살지… 그래도 우리보고 웃으라 하네… 힘내요 웃어요, 찬란한 번영의 날이 다가오고 있답니다.” 영화 ‘신데렐라맨’은 이런 노래로 시작된다.

1929년 이후 4~5년간 지독했던 미국 대공황기에 속수무책으로 괜찮아질 거라는 말만 거듭했던 당시 정부를 원망하는 노래다.

주인공 짐 브래독(러셀 크로우)은 잘 나가는 라이트 헤비급 복서로 높은 대전료를 받으면서 뉴저지의 단독주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생활을 하고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1929년 10월 뉴욕 증시의 대폭락을 기점으로 그의 삶은 추락했다. “버는건 전부 택시회사에 투자했는데, 뉴욕에서 택시회사가 망할 줄 누가 알았겠냐. 손자에게 물려주려고 했는데”라고 말하며 브래독은 분통을 터뜨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해 연초부터 정부의 경제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1929년 1월 1일자 뉴욕타임스에 “과거에 근거해 미래를 예측한다면 새해는 축복과 희망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기고가 실렸을 정도였다.

브래독의 아내(르네 젤웨거)는 남편이 ‘링의 살인자’와 맞붙어 싸우는 것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출처=네이버영화브래독의 아내(르네 젤웨거)는 남편이 ‘링의 살인자’와 맞붙어 싸우는 것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출처=네이버영화


미국 정부의 빗나간 경기전망과 뒤이은 대공황으로 브래독과 그의 가족은 고통의 수렁에 빠졌다. 한겨울에 가스와 전기요금이 밀려 난방과 전기가 끊기고 우윳값조차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팬케이크를 하나 놓고 꼬맹이 딸에게 “아빠는 이미 다른 데서 많이 먹었으니, 아빠 것 좀 먹어줄래?”라고 말하는 브래독의 모습은 의연하기보다는 처연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 부두를 전전해보지만 밀려드는 실업자 물결에 일감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1929년 3%에 머물던 미국의 도시 실업률이 1933년 37%로 수직상승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했다. 브래독의 동료 막노동꾼 윌슨은 “힘을 모아 함께 싸워야 합니다”라고 브래독에게 말한다. 그러나 브래독은 “누구와 싸우죠?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주먹을 뻗을 순 없잖냐”며 한숨만 지을 뿐이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경제의 성장 궤도는 활황과 침체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50년 주기의 장기적인 경기순환을 이론화한 러시아의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는 “4단계를 거치는 중기파동이 5~6차례 되풀이되면 장기파동(콘드라티예프파동)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학자 루이스는 실질국민소득만으로 경제성장 추세를 분석했을 때 10년 주기의 중기파동과 50~60년 주기의 콘드라티에프파동 사이에 20년 정도의 성장순환 사이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는 단기·중기·장기파동을 기록하면서 번영과 침체과정이 순환돼왔다. 지난날 영국의 산업혁명과 미국 철강·철도산업 발전이 그랬고, 오늘날 디지털산업 발전과정도 경기의 부침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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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대공황으로 브래독의 가정은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먹을 것조차 부족하다.  /출처=네이버영화갑작스러운 대공황으로 브래독의 가정은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먹을 것조차 부족하다. /출처=네이버영화


영화 ‘신데렐라맨’에서의 미국 경제 상황은 활황의 정점에서 공황으로 급전직하한 경우다. 요즘 한국 경제는 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9월30일 발표한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제조업의 10월 업황전망BSI는 79로 기준치 100을 크게 밑돌았다. 업종별로는 전자만 107을 기록했을 뿐 전 업종이 기준치에 못미친 가운데 중국의 ‘사드 보복’에 직면한 자동차의 경우 59까지 내려앉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서도 8월 전체 산업생산의 전월 대비 증가율은 0%이었고, 광공업생산은 전월보다 0.4% 늘었지만 반도체(12.4%)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한국 제조업은 기진맥진 상태다. 수출장벽은 높아만 가고, 가계부채와 내수 부진 심화에 극심한 취업난 등 아무리 둘러봐도 기업에 우호적인 신호를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에 남은 것은 이제 아이돌과 여자 골프, 그리고 반도체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의 활력이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꺾이기 전에 경제정책 방향을 기업의 활력을 되살리는 쪽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할 시점이다.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co.kr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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