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유럽도 안전 인증한 원전기술 사장시켜서야…

3세대 한국형 원전 모델의 유럽 수출길이 열렸다. 우리가 독자기술로 개발한 유럽 수출 모델인 EU-APR 표준설계가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 본심사를 통과해서다. 한마디로 우리 기술력만으로 유럽에 원전을 지어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 모델은 자체 개발한 3세대 원전인 APR-1400을 유럽 기준에 맞춰 설계한 것이다. 이 모델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원전 규제당국의 최종 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낭보를 접하고도 작금의 탈원전정책 기조를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유럽 모델이 바로 존폐 위기에 처한 신고리 5·6호기에 적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인증을 통과했다고 해서 저절로 수출 수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신고리 5· 6호기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폐쇄 결정이 나면 수출 수주전에서 절대적인 수세에 몰린다. 스스로 원전을 포기한다면 해외에서 무엇을 믿고 우리에게 원전 건설을 맡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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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완전히 황폐화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는 물론 서플라이체인(부품공급망)도 붕괴할 우려가 크다. 40년에 걸쳐 축적한 원전 노하우가 사장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부는 탈원전과 원전수출에 투트랙으로 접근하겠다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성장 가능성이 없는 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술력 제고는 고사하고 자칫하면 부품마저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것은 숙명적 과제다. 원전 수출은 그동안 축적한 경쟁력의 열매를 수확하는 일이다. 세계 원전시장은 연간 600조원에 이른다. 우리 원전기술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처음 수출한 데 이어 이제는 선진국 공략까지 엿보고 있다. 탈원전은 3조원의 신고리 5·6호기 공사비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성장동력까지 걷어차버리는 격이다. 공론화 과정에서는 이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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