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상 준수 ‘불인증’을 선언한 데 이어 시리아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패전이 확실시되는 등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정치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IS와 대결해온 시아파 민병대를 측면 지원한 이란이 헤게모니 확산에 나서면서 걸프 지역의 불안감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기에 미·이스라엘의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동반 탈퇴, 미국과 전통 우방인 터키 간 갈등 고조 등으로 아랍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하며 가뜩이나 복잡한 중동 정세는 갈수록 꼬여가는 형국이다.
미 헤리티지재단은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중동 내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지역 안정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미국 동맹국에도 해를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이디슨 허친슨 헤리티지재단 국가안보정책연구원은 “이란은 시리아에 있는 병력을 활용, 이라크를 통해 군인과 무기를 이동시키기 위한 운송 및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다”며 이란이 IS에 대항하려는 이라크의 불안감을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란은 IS의 영향력이 확산되기 전에 이들 지역을 통해 친이란 시리아 정부군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무기 지원 및 수출을 해왔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IS가 물러난 빈자리를 이란·헤즈볼라·시아파민병대·러시아동맹이 차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며 이란이 주도하는 반미동맹 확대가 중동 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알자지라 방송도 미국의 핵협정 준수 불인증에 대한 맞대응으로 이란이 시리아 내전을 더욱 고조시키거나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라크는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자치정부(KRG)와의 대립에서도 이란·터키와 연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 간 핵협상을 노골적으로 비판해온 전통 우방 이스라엘은 미국에 이어 곧바로 유네스코를 탈퇴하며 반이슬람 공조를 과시하고 중동에 새로운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 노골적으로 친이스라엘 성향을 나타내는 트럼프를 등에 업고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열린 유엔총회에서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자는 자신을 재앙에 빠뜨리고 있다”고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터키와 미국의 갈등 수위가 높아지는 점도 정세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미 국무부는 8일 터키 내 미국 공관직원 체포를 이유로 터키에서 비이민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곧바로 터키도 같은 조처로 맞받아쳤다. 여기에 수니파 맹주로서 카타르와의 단교를 강행하면서까지 이란과의 갈등을 노골화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핵협정에 제동을 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정책에 힘입어 이란에 대한 견제 수위를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알자지라 방송은 “트럼프 행정부가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이란은 중동의 핵심 플레이어로 지역 안정이 이란의 행보에 달려 있다”며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처럼 이란에 적대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데 따른 결과가 이라크나 역내 다른 지역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