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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남한산성' 감독 "낡은 것 사라진 후 새 삶...김상헌 깨달음서 배워야"

■한국 외교현실 닮은 '남한산성' 원작자·감독이 본 영화 밖 이야기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 인터뷰./송은석기자남한산성 황동혁 감독 인터뷰./송은석기자




“김상헌은 나루터 사공을 죽이고, 그의 손녀인 나루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날쇠를 보면서 부끄러워한다.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 깨달음을 얻은 거다. 이는 제가 원하는 상헌의 모습이었고, 지금 정치인들의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46·사진)은 원작소설은 물론 역사적 사실과도 달리 상헌의 마지막을 자살로 그린 의도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폐허가 된 숙소에서 최명길이 김상헌에게 궁으로 돌아가자고 하자 상헌은 “진정 백성을 위한 삶의 길이 무엇이냐”고 묻고 “그것은 모든 낡은 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열린다”고 말한다. 이 같은 대사에 대해 황 감독은 “이는 자기 자신, 제도 그리고 자신이 모셨던 왕까지도 부정하는 혁명적인 발언”이라며 “김훈 작가가 만들어 놓은 ‘깨달음’을 얻은 김상헌이라면 자살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역사적 사실을 대부분 살렸지만 상헌의 마지막만은 자살이라는 결론을 만들었는데 이는 감독 자신의 정치인에 대한 판타지이자 그리움을 반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 감독은 상헌과 명길을 통해 자신이 그리워하는 우리 시대 정치인의 초상을 그려냈다. “상헌과 명길은 각자 추구하는 철학과 관념이 대척점에 있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척화와 주화로 갈렸지만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능력이나 생각은 두 사람이 모두 정확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이 없다. 무조건 당론으로 찬반을 결정한다. 국익을 위해서 초당적으로 합리적·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소설을 읽었을 때 상헌과 명길은 그런 면에서 달랐다고 느꼈고, 그것이 두 사람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위정자의 모습도 그려냈다. “어느 쪽이냐”는 물음이 무색하게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군병일 뿐”이라고 답한 수어사 이시백에 대해 명길은 “당신 같은 장수가 수십 명만 더 있었어도 지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라고 속으로 읊조린다. 이 부분을 가리키며 황 감독은 “소설을 읽으며 김상헌, 최명길, 이시백처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결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관객들도 그런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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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을 본 정치인들의 제각각 해석은 화제가 됐고 보수 진영은 김상헌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기도 했다. 황 감독은 “상헌은 자기가 세운 왕이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말하며 성찰한다”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 해도 속으로는 상헌처럼 깨달음을 얻고 각성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날쇠와 나루라는 민초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은 나루가 연 날리러 간다며 뛰어 나가자 날쇠는 “너무 멀리 가지 마라”며 배웅하고 멀리서는 망치소리와 함께 폐허가 된 초가집을 다시 세우는 민초들의 모습이 화면 너머로 보인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이를 통해 희망을 보자는 것. “에필로그가 앞에 만들어 놓은 차갑고 건조하고 관조적인 색깔을 너무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차기작 계획을 묻자 황 감독은 “계획을 하고 살아본 적 없이 늘 닥쳐서야 시작을 한다”며 “여전히 ‘남한산성’ 안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SF 장르를 꼭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회 고발성 영화인 ‘도가니’, 명절용 코미디 ‘수상한 그녀’, 정통사극 ‘남한산성’까지 폭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까닭에 언젠가 나올 황동혁 표 SF가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송은석기자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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