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가 잘하면 리더가 덕을 본다. 부하가 못하면 리더가 욕을 본다. 부하가 상전인 이유를 살펴본다.
리더의 성공은 성과로 결정된다. 성과 없는 리더에게 설 자리는 없다. 슬픈 일이지만 리더에 대한 조직의 선택은 성과에 대한 조건부 선택이다. 모든 것이 불안해진 현실에서 성과는 조직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팩트인 동시에 최종 목표다. 그래서 조직은 늘 하위 조직에 목표를 할당하고 담당 리더에게 목표 달성을 과하게 주문하고 냉혹하게 평가한다. 버티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용서는 없다. 결국 성과는 생존이고, 리더의 운명이 되었다.
성과를 주도하는 것은 리더이지만 성과를 수행하는 당사자는 부하직원이다. 그래서 부하직원이 목표를 달성하면 1차 수혜자는 리더가 되고 조직은 그 다음이다. 만약 부하직원이 목표 달성에 실패하거나 임무를 회피하면 직접적인 1차 피해자는 리더가 된다. 결국 리더에게 부하직원은 상전(上典)인 셈이다. 부하직원에 의해 리더의 운명이 결정되니 말이다.
과거에 리더는 분명 상전이었다. 지금도 힘겨워하면서도 리더가 상전이라고 생각하는 리더는 많다. 외형상 리더가 상전인 것만은 사실이다. 리더가 부하직원에게 지시도 하고 동기부여도 시킨다는 점에서 상전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 가운데 하나는 상전 노릇하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조직이 제도적으로 정하고 있는 리더의 직급과 권한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리더가 원하는 만큼 혹은 원하는 대로 부하직원들이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칠 지경이다. 왜 그럴까? 부하직원들은 시스템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부하직원을 움직이는 동기요인이 변했다.
월급의 대가로 일은 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본인은 조직에 다니는 것이지 상전을 모시기 위해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미 일반화되었고 리더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리더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리더에게는 딜레마다. 리더로서 권위는 지키고 싶은데 부하직원들은 이를 권위주의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더에게 충성하지 않는 부하직원들에게 충성까지는 아닐지라도 목표만큼은 달성해달라고 애원해야 할까? 해야 한다.
이미 상전은 역전(逆轉)되었다. 이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리더는 고통스러워진다. 부하직원들은 리더와 달리 저항하는 방식이 영리하다. 출근은 한다. 일도 한다. 그것도 할 일만 한다. 더는 하지 않는다.
일도 충성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이 있다. 이젠 부모가 자식을 이기지 못하고 리더가 부하직원을 이기지 못한다. 부모가 변하고 리더가 변해야 한다. 자식이 변했고 부하직원이 변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집안이나 갈등이 많은 조직은 이러한 변화를 거부한 집안과 조직이다. 이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대가를 리더만 감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리더의 생각을 역전시키면 상전의 역전을 견딜 수 있다.
그렇다면 상전의 역전을 인정하면 리더에게 어떠한 이득이 있을까? 이득이 있어야 리더도 부하직원에게 상전 자리를 양보할 것 아닌가? 분명한 이득이 가득하다. 이처럼 상전의 역전을 인정하면 리더가 얻게 될 이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책임감 강박증’에서 해방될 수 있다. 리더의 책임은 권한을 초월한다. 권한은 줄고 책임은 늘었다. 여유로운 리더는 없다. 책임감에 대한 강박증은 자리의 높이만큼 크다. 때때로 책임감 강박증으로 인해 부하직원들과 갈등을 겪거나 홀로 고립되는 리더도 많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책임감 강박증은 리더를 늘 압박한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리더의 책임을 도와줄 구원투수는 과연 누구일까? 바로 부하직원이다. 그들과 함께하면 리더는 살 수 있다. 성과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실제적 결과물에 대한 상당 부분의 책임감 강박증에서 해방될 수 있다.
같은 조직에 있는 리더가 무엇을 원하고 달성해야 하는가를 밑에 있는 부하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 심리적으로 고립된 리더가 혼자서 애쓰고 있는 모습을 부하직원들이 멀리서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고 리더는 이러한 부하직원들을 원망만 하는 조직의 성과가 좋을 리 없다. 반면에 리더가 앞서가면 바짝 곁에서 함께 뛰는 부하직원들이 있다면 책임감은 분산되고 리더의 강박증은 자신감으로 변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누가 상전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부하직원이 자신을 돕는 조력자라는 생각은 리더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에 한 가지를 더 제공한다. 바로 실제적인 성과다. 리더가 변심만 하지 않는다면 이 성과는 반복될 수 있다. 그러면 리더는 살아남는다.
둘째, ‘새로운 학습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선배에게 배우고, 변하는 것은 후배에게 배우라는 말이 있다. 참 맞는 말이다. 조직에 들어오면 세상의 변화보다 조직의 변화에 따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조직이 원하는 능력과 분야에 집중하다 보면 하던 일에 숙련되고 익숙해지면서 길들여진다. 그 일 외의 일은 잘 모르기도 하고 잘 하지도 못한다. 이럴 때 부하직원들의 능력과 관심사로부터 배울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후배들이 선배들에 비해 부족한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후배에게도 배울 것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 ‘역 멘토링(Reverse Mentoring)’ 혹은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한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리더에게 진짜 부끄러운 일은 모르는 것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은 다 아는데 리더 자신만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잘 숨기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부하직원의 눈에 이러한 리더가 얼마나 측은하고 불안해 보일까? 리더도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러면 리더는 살아남는다.
셋째, ‘성과의 1차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원님 덕에 나팔 불 수 있으면 불어야 한다. 부하직원들과 심리적 교감을 하고 함께 의논하고 기쁜 마음으로 이룩한 성과의 1차 수혜자는 리더가 된다. 책임은 컸지만 대가의 순서는 리더가 먼저다. 별난 리더는 부하직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 이를 감시비용(Monitoring Cost)이라고 한다. 부하직원을 상전처럼 모시는 리더가 진짜 상전 대접을 받는다. 함께 달성한 성과의 혜택을 자신의 리더에게 기꺼이 양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먼저 덕을 보는 셈이다. ‘하수’는 부하직원과 싸우는 데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하고, ‘선수’는 필요할 때 부하직원을 잘 활용하여 성과를 달성한다. 반면에 ‘고수’는 부하직원도 행복하고 리더 본인도 행복하면서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그 수혜는 리더 본인이 먼저 받는다. 과연 누가 더 지혜로운 걸까? 그러면 리더는 살아남는다.
이상과 같이 상전의 역전으로 리더가 어떤 덕을 볼 수 있는가를 생각해봤다. 물론 실력과 품위로 무장된 훌륭한 리더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이러한 리더를 존경하고 학습하며 실천하는 이상적인 모습도 많다. 그러나 리더의 위상이 위협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리더 혼자 광야에서 있을 수는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된다. 곁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조직은 리더 혼자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부하직원이 반드시 곁에 있다. 주어진 아군과 각을 세운다면 리더만 골탕 먹는다. 따라서 리더의 목적을 달성하고 함께하는 부하직원들과 ‘동반 행복’하려면 부하직원을 상전으로 모신들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결국 리더가 살아남는 방법은 누가 상전이든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과를 내고 함께 오랫동안 도우면서 사는 것이다.
신제구 교수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교육컨설팅코칭학회 회장,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인력개발학회 상임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글_신제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