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창업혁신국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정상범 논설위원

가상화폐 열풍, 정부 개입 반감 탓

신산업은 '기업할 자유'에서 싹터

지역마다 규제 프리존 허용하고

노동개혁 등 이념·정책 구분해야

정상범 논설위원


최근 열풍이 불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때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90%를 차지했던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해외 송금 등에서 까다로운 규제를 하고 있는데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다 보니 가상화폐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뉴햄프셔주나 유타주·캘리포니아주에서 가상통화 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다. 가상화폐가 많이 거래되는 곳일수록 규제가 심하거나 정부 개입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가상화폐를 창시한 그룹이 반규제·반정부를 기치로 들고 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현재 가상통화를 전면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신사업과 혁신이란 기업 할 자유에서 싹트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혁신 친화적 창업국가’를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창업과 신산업 창출이 이어지는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규제 완화와 신산업 육성, 혁신적 벤처 창업,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여건 등을 갖춰 활력 넘치는 경제와 미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창업기업 육성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방침도 나왔다. 새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보완 수단으로 혁신 성장에도 신경을 쓰겠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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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 바로 ‘규제 샌드박스’다. 신산업 분야를 대상으로 신기술 개발 놀이터를 만들어 일정 기간 규제 없이 뛰어놀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도입한 제도를 뒤늦게나마 받아들인 것이어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는 되고 지역별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규제 프리존’은 왜 안 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굳이 따진다면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 분야에 국한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지만 규제 프리존은 지나치게 규제를 많이 풀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은 규제를 풀어도 되지만 대기업은 오히려 규제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규제 프리존은 전국 14개 도시에서 27개 특화산업을 육성하는 것으로 신사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나 기대효과가 훨씬 크다고 봐야 한다. 일본만 해도 지방은 물론 도쿄에까지 규제 프리존을 도입할 정도로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방향성조차 불분명한 반쪽짜리 규제 완화로 기업들이 마음껏 모래판에서 뛰어놀게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창업혁신 국가로 가는 또 다른 지름길은 벤처·중소기업 창업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급변하는 노동시장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어느 중소기업 사장은 자신은 매달 300만원을 가져가면서도 직원들에게 400만~500만원씩 월급을 주고 있다. 그래도 일감이 몰릴 때면 쉬고 싶다며 불만을 늘어놓는 직원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뺀다. 10월 추석 연휴로 매출이 줄어들어 직원 월급을 마련하느라 은행 대출까지 받았다는 자영업자들의 하소연도 들려온다. 이런데도 최저임금을 못 주고 휴가도 제대로 못 보내는 기업이라면 차라리 문을 닫으라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시급한 노동개혁은 뒷전으로 미룬 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 의무화를 밀어붙이고 있으니 중소기업들의 등골이 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창업정신이 싹트고 기업이 활력을 찾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규제 완화든 노동개혁이든 현장의 실정과 요구에 맞아야 성과를 내는 법이다. 지금처럼 입맛에 맞는 규제나 개혁에만 골몰한다면 진정한 혁신 성장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진정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면 과감한 규제혁파를 도입해 투자의욕을 북돋우고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제야말로 이념과 정책을 구분하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가 절실한 때다. ssang@sedaily.com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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