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한국도시행정학회장

투기 가수요 근절할 가장 확실한 수단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했던 후분양제는 아파트 착공 전 분양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아파트를 일정 단계 이상 짓고 분양하는 방식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공주택부터 후분양제를 도입하고 민간은 주택도시기금 지원과 택지공급 등 인센티브를 줘 희망업체만 참여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 야당도 후분양제 도입을 요구하면서 민간 부문 전면도입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후분양제 찬성 측은 현재 선분양의 부실 시공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 분양권 전매 등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해 전면적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후분양제가 바로 도입되면 소비자가 수억원에 달하는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해야 하고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중견 건설사들은 사업 추진이 어려워져 결국 주택공급이 줄고 시장혼란을 부추길 수 있는 만큼 제도 보완이 우선이라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양측 견해를 싣는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아파트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주택 부문부터 후분양제를 도입한 후 민간 부문도 인센티브를 통해 유도하는 방식으로 후분양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후분양제를 시행한다니 다행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아파트 선분양제, 즉 선(先)분양-후(後)시공 방식은 지난 1977년 주택공급 확대 차원에서 도입됐다. 당시 주택보급률이 70%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주택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터라 정부가 선분양제를 허용한 것이다. 이때 선분양제 도입으로 주택가격 상승을 우려한 정부는 견제수단으로 분양가 규제도 함께 시행했다. 그 이후 IMF 위기를 맞게 되자 위기극복 차원에서 분양가 자율화 조치가 취해졌으나 선분양제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정책수단 간 균형이 깨졌다. 참여정부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아파트 후분양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후분양제를 시행하면 주택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건설업계의 반발로 도입이 번번이 무산됐다. 고가의 주택을 실물도 보지 못하고 준공 시점에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구입하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이토록 비정상적인 주택분양제도가 어떻게 40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이는 주택공급과 관련된 세 주체가 모두 이익을 보는 구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분양제에서 건설사는 공사대금 마련 부담을 덜게 된다. 시행사나 건설사가 토지를 확보해 분양승인을 받으면 공사하기 전에 분양을 통해 계약자를 모집해 계약금을 받고 공사기간 중에는 중도금을 받아 건설자금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정부도 수혜자였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는 분양계약을 한 후 2~3년이 지난 입주 시점에 주택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많아 시세차익을 볼 수 있었고 정부는 별다른 부담 없이 주택공급 확대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선분양제는 버리기 아까운 카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 후분양제 의무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국가는 지난 40년 동안 소비자 대신 건설업계를 도운 셈이다. 이미 주택보급률은 100%를 초과했고 부동산을 사두기만 하면 무조건 시세차익을 누리는 시대도 아닌 저성장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부실시공과 같은 피해를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이제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할 때다. 후분양제야말로 비정상적인 분양제도를 정상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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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분양제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후분양제가 필요하다. 선분양제에서는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까지도 분양시장에 참여한다. 이로 인해 시장이 가수요가 일어나고 분양권이 전매되는 등 주택시장 불안을 불러온다. 지난 8·2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선분양제에서 공급자는 분양가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 준공 시점보다 2~3년 앞선 분양 시점에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시공 후에는 비교적 정확한 공사비를 산출할 수 있으나 공사 전에는 적정한 분양가를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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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분양제의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건설업체의 부실시공과 품질저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입주시 아파트 상태가 분양계약 당시 봤던 모델하우스와 다르거나 하자가 발생해 일어난 소비자와 시공사 간 분쟁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조정 신청건수는 한해 수천건에 이르고 있다. 최근 부영주택이 시공한 경기 화성의 동탄 2신도시 부영아파트에서 무더기 하자가 발생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쯤 되면 설혹 입장과 관점이 다르다 하더라도 후분양제 도입에 대한 타당성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대신 후분양제 도입에 따른 업계의 우려나 소비자 부담 증가를 강조할 것이다. 먼저 후분양제 도입 반대 측은 후분양제 도입이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전가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택가격은 원가가 아닌 주변 시세를 고려해 정해지는 만큼 후분양제 시행이 반드시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소비자에게 목돈 마련의 부담이 생긴다고 우려하고 있다. 후분양제에서도 서울주택도시공사(SH)처럼 계약금·중도금·잔금으로 나눠 내도록 할 수 있으며 금융권에서 80% 정도 지어진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만들면 되는 일이다.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중소 건설업체가 줄줄이 도산할 가능성이 커 주택산업이 위축된다고 우려한다. 이를 이유로 지난 40년간 소비자에게 위험을 부담시켜왔음을 상기한다면 이는 지나친 주택공급자 편향적인 주장이다. 향후 정부가 발표할 후분양제 로드맵에 중소 건설업체에 대한 방안이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대형 건설사와 중소 건설사 간 품질경쟁이 이뤄지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소 건설업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한국도시행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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