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대통령 탄핵도 해냈는데 이제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약 6개월에 걸쳐 23차례, 연인원 1,700만명, 연행자 0명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촛불집회. 광장으로 나온 시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를 일궈냈다. 촛불집회는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구심 속에 시작됐지만 결국 역사상 유례없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다수의 시민이 참여했던 직접민주주의의 성공적 경험은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먼저 병원 전공의, 대학 조교,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다양한 주장이 공론화되면서 일부 불합리한 제도를 뜯어고치는 성과를 거뒀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갑질’과 성추행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진 수련병원 5곳에 대해 진상조사에 돌입했다. 교수의 절대 권위에 억눌렸던 전공의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의료계 관행’이라며 자행되던 폭력과 성추행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약자들의 목소리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변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와 관련해 정부로부터 “폐지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등급제로 인해 필요한 지원이 오히려 제한되고 낙인효과를 유발한다며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지난 5년간 주장해왔다. 이용석 장애인총연맹 정책실장은 “촛불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며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고 보여주고 한 것이 큰 홍보 효과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학교비정규직의 임금이 일부 인상됐고 참정권 연령 기준 완화와 관련한 논의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시민단체 등을 통한 사회변화는 일상의 삶으로 확산됐다. 광장에서 당당하게 대통령을 비판했듯 가정·직장·학교 등 일상 속에서도 비민주적인 권력자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정유라 사태’의 진원지인 이화여대 학생들은 재학생과 졸업생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총장 선출제도를 개선했다. 퇴근 후에도 업무 지시를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에 대해 ‘저녁 있는 삶’을 바라는 목소리가 저변에서부터 커지면서 이른바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 지난 9월6일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는 퇴근 후에는 SNS로 업무지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은 각자의 일상에서 부딪힌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나왔다고 볼 수 있다”면서 “다만 일상의 문화와 의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아직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집회와 시위도 좋지만 이제는 일상 속에서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의 민주성을 확장하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도 드러냈다. 자신들의 주장만 강조하고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일부 단체를 비롯해 아직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민주화’를 내세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등 일부 강성 노조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1년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성매매 합법화,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양심수 사면 등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들에 대한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촛불집회 때 한 차례도 빠짐없이 참석했다는 강용민(45)씨는 “사회적 논의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들어달라고 하는 행태를 보면 ‘이러려고 광장에 나왔던 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며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건 좋지만 ‘촛불’을 내세우는 것만큼은 지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지인(24)씨는 “지난 촛불집회에 나왔던 시민들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참여한 사람들”이라며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본인들 스스로 독선적으로 나가는 건 위선”이라고 꼬집었다.
/이두형·신다은기자 mcdj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