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체공학자다. 유체의 흐름, 즉 유동(流動)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며 연구하는 유체역학 분야를 30년 넘게 천착했다. 유체역학은 항공기와 선박·자동차 등 운송수단 설계는 물론 과학수사에 사용되는 DNA 감식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성 교수는 극히 작은 유체 운동을 연구하는 ‘미세유체역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둬 이 분야의 학문적·기술적 진보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동전 크기의 미세유체칩(Lab on a chip·랩온어칩)에서 극소량의 액체방울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랩온어칩은 작은 반도체 칩에서 극미량의 시료만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 의·약학, 보건·환경 등 많은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세유체역학의 중요 기술 중 하나인 유체 샘플의 온도제어 기술은 그동안 정교함이 떨어져 랩온어칩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성 교수는 미세유체칩의 마이크로미터(1㎛는 0.001㎜) 단위 초미세 액체방울을 정교하게 제어해 DNA를 분석할 수 있는 ‘음향열적 가열법’을 개발하는 등 독창적인 연구를 통해 랩온어칩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돌파구를 마련했다. 특히 이 기술을 이용해 제약·물질합성·생화학 분야 등에서 다양한 공정과 분석을 수행할 수 있어 차세대 헬스케어 진단·분석장치 개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성 교수는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미세유체칩 상용화를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검사를 위한 혈액·타액·땀·객담 등이 대부분 유체라는 점에서 미세유체역학 분야 발전이 헬스케어 혁신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가 독자 개발한 음향열적 가열법은 음향과 빛에너지를 이용해 신속·정교하게 미세 액체 방울의 온도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음향열적 가열법은 고체와 액체로 자유롭게 변하는 성질을 가진 점탄성 물질에 음향파가 흡수되면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가열속도가 빠르고 온도 제어가 쉬워 원하는 부분만 가열할 수 있다. 온도뿐 아니라 미세유체의 크기·이동·위치까지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어 생화학, 의·약학 분야 등에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성 교수는 “미세유체칩에서 섞이지 않는 두 유체로 조성된 액체방울의 위치를 제어하는 것이 필수적이나 기존에는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교한 위치제어가 어려웠다”며 “음파가 점탄성 물질 내에 흡수되면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한 음향열적 가열법을 개발하고 열모세관현상을 기반으로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교한 액적 제어가 가능한 기술을 학계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음향열적 가열법을 유전물질 증폭 방법인 ‘중합효소 연쇄반응(PCR·Polymerase Chain Reaction)’에 적용해 반응처리 시간을 기존 1~2시간에서 3분으로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PCR는 특정 유전물질을 증폭하는 방법으로 대부분 유전물질 조작실험 과정에 사용된다. DNA에 점진적으로 열을 가해 이중나선이 융해되는 변성온도를 바탕으로 돌연변이 유무를 판별, 검출하는 ‘DNA 변형곡선 분석’에도 음향열적 가열법을 적용했다. 이로써 단시간에 분석하는 길을 만들어 빠른 질병 진단 등 의·약학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 교수는 “이 기술이 미세유체역학의 활용성을 높인 데 의미가 있다”며 “검역·법의학수사 등 생화학 분야와 건강검진·신약개발 등 헬스케어 분야의 기술 혁신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영국왕립화학회에서 발간하는 미세유체역학 분야 국제학술지 ‘랩온어칩(Lab on a Chip)’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과학기술인을 매월 1명씩 선정해 상금 1,000만원을 수여한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