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우리은행장이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하면서 나머지 시중은행들도 긴장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특혜채용 의혹으로 물러난 것이지만 이면에는 전 정권 사람으로 분류돼온 이광구 행장을 쳐냈다는 해석도 만만찮아서다. 특히 이날 경찰이 노조 설문조사 개입의혹을 이유로 전격적으로 KB국민은행 본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금융사 지배구조가 줄줄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권에 대한 압수수색은 올해 들어 여섯 번째다.
3일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전 정부에서 임명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서금회’ 멤버인 이광구 행장이 (교체) 타깃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올해 초 연임에 성공하면서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내부의 파벌 갈등으로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물러나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이 행장이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를 만나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소명한 지 이틀 만에 퇴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국의 압력이 배경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은행은 조만간 검찰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이 긴장하는 것도 꺼진 불씨가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 살아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DGB금융의 경우 박인규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퇴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올해 초 회장 연임을 놓고 반대 진영에서 금융 당국에 투서를 보낸 게 확전돼 박 회장이 결국 사퇴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이광구 행장이 사임하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더구나 이광구 행장이 특혜채용 의혹으로 물러난데다 금융 당국이 금융공공기관과 14개 시중은행에 대한 채용절차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어 결과에 따라서는 불똥이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에게 직접 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국의 점검으로 우리은행과 같은 의혹이 적발될 가능성은 낮지만 내부 제보나 투서 등이 현실화되면 잔여 임기와는 무관하게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될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특혜채용 의혹은 한 번 불거지면 여론의 싸늘한 시선 때문에 해명도 안 되고 결국 조직의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CEO가 원하든 원치 않든 사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내년 4월 임기를 마치는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수출입은행장 시절인 2015년 금융감독원 채용 과정에서 수출입은행 간부의 아들을 잘 봐달라고 청탁한 의혹을 사고 있다. 김용환 회장이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지난달 25일 김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해 이미 수순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노조 성향의 정부하에서 금융노조가 금융지주 회장을 도가 넘게 흔들고 있는 것도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김정태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까지인데 노조가 황당한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적폐 대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연임에 반대하고 있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이사회가 최종 결정을 했지만 노조는 여전히 퇴진을 압박하면서 갈등이 잠복 중이다. 또 경찰은 이날 회장 연임 찬반 설문조사 조작 의혹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에 있는 KB 금융지주 본사를 압수수색 했다.
이와 함께 금융권에서는 이경섭 농협은행장과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이 다음달에 임기가 끝나는 등 후임을 놓고 외부 입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GI서울보증은 1년 가까이 공석 상태였다가 최근에서야 사장 공모절차를 진행 중이며 김재천 주택금융공사 사장의 임기는 이미 만료됐지만 현재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성수 사장이 수출입은행장이 되면서 한국투자공사(KIC) 사장도 공석이다.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의 임기는 내년 5월 만료된다. /황정원·조권형·박진용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