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은 1983년에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35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이다. 영화 데뷔작 ‘무사’로 2002년 대종상 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속 악랄한 남편으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우 박정학은 “연기는 교류하는 것, 상대배우와 하나 하나 쌓아가는 것이다”고 말했다.실제 만난 박정학은 강인한 외모와는 달리 다소 얇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TV 속 무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말이 별로 없을 것라는 예상과는 달리 성격도 상당히 유쾌하다.
“반전 매력을 좋아하세요”라고 기자에게 말을 건넨 그는 “강인하게 알고 갔는데, 알고 보면 되게 따듯한 사람이라고 하던걸요. 제 입으로 말하면 민망해요. 하하”라며 너스레를 떤다.
박정학에 관한 선입견 중 하나가 실제로 목소리가 저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 그의 평상시 목소리는 오히려 고음에 가까웠다. 그래서 촬영 현장에선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무사’ 촬영 땐 분장만 지우면 간드러진 목소리로 ‘야 괜찮냐’ 로 말을 하니 더더욱 그러했다. “정학이 쟤는 영화 개봉하기 전에 중국에 묶어놓고 와야한다”는 농담을 건넸을 정도.
그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건 오랜 노력에서 기인했다. 그에 따르면 “배우는 도레미파솔라시도 등 저음부터 중음까지 다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음악을 처음 배울 때 음계부터 배우듯 배우의 기본이라는 뜻.
“역할에 맞게 목소리 톤이 바뀌는 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됐다. 자기 훈련의 결과다. 시립극단에 있을 때 엄청난 훈련을 시켰다. 다양한 대본을 쪽지로 나눠주면서 여러 상황에 노출시켰다. 몸을 쓰는 것 역시 그 때 배웠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시립극단에서 되게 많은 걸 배웠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입담은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로웠다. “(20년 전)그 당시에 연예인들을 한번 보세요. 우리 같이 강하고 세게 생기면 안방극장에서 용서가 안 되던 시절이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용서가 되던걸요. 무대가 좋아서 배우의 길에 들어섰는데 그렇게 드라마와 영화쪽 일도 하게 됐어요.”
35년 가까이 연기에 매진하고 있는 그이지만,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특히 “집에서 놀고 있으면, 막 답답하다. 작품 들어가서 배우들하고 작업하면서 교류하는 쾌감이 있다. 그걸 즐기는 게 재미있어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박정학의 매력은 관객을 집중시키는 내공에 있다. 특별하게 대사가 많지 않은 장면임에도 그가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주의가 집중이 된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그렇게 말해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역할에 100프로 몰입하려고 한다. 특별히 다른 건 없다. 내 것을 많이 준비해가기 보단 현장에서 적응하려고 한다. 연기는 교류하는 것이기에. 또 상대 배우와 하나 하나 쌓아가는 게 연기 아닌가. 배우가 뭔가를 준비한다고 해서 과하게 준비해서 가다보면, 그 상황에 있지 못하는 것 같더라. 자신이 준비한 것에 갇혀서 그것만 하게 된다.”
10년째 극단 겸 연기학원인 ‘리얼액터스 팀’을 운영하고 있는 연기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그는 “연기를 가르쳐준다기 보다는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알려주는 곳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하며 스스로 배우는 것 역시 많다고.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나 역시 공부하게 되고 굉장히 많은 희곡을 읽게 되더라. 정말 듣도 보도 못한 희곡들을 많이 알게 됐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게 맞더라.”
그는 운명처럼 아내를 만났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진 독신주의자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성에 관심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연극’을 선택하기로 한 이상 혼자 살아가기도 힘들다는 걸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 극단에 잠시 들른 게 엄청난 인연을 몰고왔다. 연극 배우였던 아내는 무섭게(?)생긴 배우가 홀로 있던 극단 사무실에 들어서자 공포심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가 나가자마자 문을 걸어 닫고 그날 밤 일기까지 썼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사람을 만났다’ 고. 그렇게 아내에게 박정학이란 남자는 강력하게 각인이 됐다.
한달 뒤 다시 우연처럼 아내가 눈 앞에 나타났다. 너무도 좋은 향기를 품고서. 향기에 민감한 그는 “아 이여자를 놓치면 평생 혼자 살아야겠다‘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지 1주일 뒤에 ’너하고 결혼하고 싶다‘ 고 사랑의 고백을 했다. 로맨티스트답게 연애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운명처럼 만난 여인이다. 사랑을 고백하는데 아내 역시 ’네‘ 라고 답하더라. 너무 신기했다. 사실 그 때는 무지 내성적일 때라 말도 잘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 속으로 훅 들어온 여인이다.(웃음)”
그의 모토는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자’이다. 가장 행복한 때는 ‘현재 지금’이다. 후회하면서 사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는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50대란 나이가 전혀 느끼지지 않을 만큼 생각 역시 열려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 보여줄 게 더욱 많이 남아있는 배우이다.
“나이 이야기는 우리만 하는 것 같다. 제가 생각보다 어려요. 하하. 나이에 맞는 대우 받을려고 하다보면 스스로가 창피해지는거죠. 역할이 들어오면 해야죠. 그렇다고 아무거나 하지는 않죠. 무수히 많은 배우들이 있음에도 선택 받는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잖아요. 그 많은 연극 배우들 중에 뽑혔다는 건 지금도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대학로 나오면 술 사고 있습니다. 허허허.”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