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올해는 이 말을 바꿔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풍성한 책들만큼이나 진수성찬과도 같은 클래식 공연이 이달 중 관객들을 만난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 오케스트라에서부터 ‘클래식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까지 음악 애호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무대가 줄줄이 이어진다.
우선 세계 제일의 관현악단으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오는 19~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베를린필의 내한 공연은 지난 2013년 이후 4년 만이다. 지난 2002년부터 이 악단을 이끌어온 래틀이 차기 런던 심포니(LSO)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터라 그와 함께하는 베를린 필의 마지막 내한 공연이기도 하다.
특히 국내 클래식 팬들의 관심은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성진이 협연자로 나서는 첫날 공연에 집중되고 있다. 애초 협연자로는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예정돼 있었으나 예기치 않게 팔 부상을 당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주최사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관계자는 “조성진의 출연이 결정되기 전에도 매진이었지만 조성진 출연이 확정된 이후에는 취소 표가 나오는 즉시 예매가 이뤄질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고 전했다.
조성진은 이번 공연에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15세에 불과하던 지난 2009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이 곡을 연주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낸 바 있다. 관객들의 지대한 관심을 그대로 반영하듯 티켓 가격 역시 올해 열린 모든 공연을 통틀어 단연 최고가다. 가장 높은 등급의 R석은 45만원으로 책정됐으며 S석 39만원, A석 28만원, B석 17만원, C석 7만원이다.
베를린필 못지않은 올스타 군단인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는 15~16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갖는다. 마리스 얀 손스의 뒤를 이어 지난해 9월부터 RCO를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다니엘레 가티는 이번이 첫 번째 내한이다.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가티는 이틀 동안 관객에게 들려줄 레퍼토리로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과 말러 교향곡 4번,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골랐다. 가티는 로열필하모닉, 프랑스국립관현악단, 취리히오페라하우스 등의 수석지휘자를 지낸 이력을 보유한 지휘자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4대 콩쿠르 중 하나인 ‘반 클라이번’에서 우승을 거머쥔 선우예권도 이달 무대에 오른다. 그는 오는 23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미국의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인 벤저민 베일먼과 ‘듀오 공연’을 갖는다. 선우예권은 반 클라이번 이전에도 이미 국제 콩쿠르에서 7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무서운 속도로 인지도를 쌓아 왔다. 베일먼 역시 2012년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상인 에이버리 피셔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주목할 만한 젊은 아티스트로 자리잡았다. 1989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서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듀오’와 버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등을 연주한다.
1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이차크 펄만의 리사이틀도 주목할 만하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의 펄만은 현존하는 최고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연주자다. 그는 4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쓸 수 없게 됐지만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번 무대는 2015년 ‘70세 기념 월드투어’ 이후 2년 만에 갖는 내한 공연이다. 펄만은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우선 연주한 뒤 다른 곡들은 예고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해 청중의 즐거움을 북돋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