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된 벤처투자사 햄브레히트앤드퀴스트(Hambrecht&Quist·H&Q)는 아직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기 전부터 테크 벤처(Tech Venture) 발굴에 매진했다. 1980~1990년대 애플컴퓨터와 어도비시스템즈·아마존 등 지금은 ‘공룡’이 된 기업의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이후 치열해진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1999년 또 다른 투자은행인 체이스맨해튼뱅크(JP모건체이스의 전신)에 인수됐다. 한편 H&Q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1986년 홍콩에 H&Q아시아퍼시픽이라는 명칭으로 지점을 냈고 이후 1998년 H&Q아시아퍼시픽이 설립한 한국(서울) 사무소가 바로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H&Q코리아)다. H&Q코리아는 이처럼 이름 만큼 짧지 않은 연원을 가졌다.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H&Q코리아는 단순히 한국 지점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 1세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로 꼽히며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 사모펀드가 국내에서 법제화한 2005년 홍콩 지점으로부터 독립(스핀오프)해 국내 투자 전용 PEF를 조성했고 현재까지 총 24개 기업에 공동투자 및 인수금융 포함, 약 1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무엇보다 H&Q코리아는 자금을 일단 모집한 후 투자대상을 선정하는 블라인드펀드로 5,000억원을 조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PEF 운용사다. 주로 외국계 재무적 투자자(LP)를 공급원으로 삼는 국내 PEF 운용사와 달리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4대 공제회, ING 등 국내 기관투자가를 주요 LP로 뒀다. H&Q코리아는 공룡의 가능성을 알아본 H&Q의 선구안을 이어받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H&Q코리아는 1998년 쌍용투자증권(현 신한금융투자)의 경영권 인수 후 매각(바이아웃)에 성공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3,000억원 규모의 1호 펀드(H&Q-국민연금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를 설립했고 2008년 3,725억원 규모의 2호(H&Q 제2호 사모투자전문회사) 펀드를 거쳐 현재는 2013년 조성한 케이에이치큐 제3호 사모투자전문회사(5,642억원 규모)를 운용하고 있다. 2008년 이정진 대표가 합류하면서 이종원·임유철 대표와 더불어 3인 공동대표 체제가 됐다.
펀드마다 특징이 있다. 1호 펀드는 부품소재산업에 주목했다. 자동차 부품사인 만도를 비롯해 선박엔진 부품사 현진소재, 플라스틱 소재를 생산하는 대한유화공업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국내 부품 제조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던 시기인 만큼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1호 펀드는 29%라는 높은 내부수익률(IRR)을 거두며 원금 대비 2배가 넘는 수익을 내고 조기 해산했다.
특히 알짜 부품사로 꼽혔던 만도를 한라그룹의 품으로 돌려주는 데 H&Q코리아의 공이 컸다. 만도는 외환위기 때 한라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가 2008년 시장에 매물로 나왔는데 H&Q는 LP들을 만나며 “피인수(만도) 기업가치를 유지하는 데 한라그룹이 가장 적격”이라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실제 ‘기업가치 존속 및 향상’은 H&Q코리아의 주요 투자원칙이다.
2호 펀드는 포트폴리오에 소비재 기업을 담았다. 국내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하이마트, ‘인강(인터넷 강의)’ 1인자 메가스터디, 에스콰이아(현 EFC) 등 굵직한 곳들이다. H&Q코리아는 2008년 유진그룹과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2조원 가까이 베팅하며 인수에 성공했다. 2011년 하이마트는 롯데에 인수돼 지금의 롯데하이마트가 됐다. 다만 에스콰이아가 2014년 법정관리에 들어서는 등 2호 펀드는 1호보다는 다소 저조한 수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3호 펀드는 신사업이다. 국내 온라인 취업포털 1위인 잡코리아 지분을 바이아웃 목적으로 100% 인수했고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 어린이 놀이방을 운영하는 소프트플레이코리아 지분 70%를 역시 바이아웃 목적으로 인수했다. 놀이방은 이제 ‘키즈존’ ‘키즈카페’라는 어엿한 놀이 공간으로 변모했고 소프트플레이코리아는 전국에 30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취업 포털인 사람인과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잡코리아는 현재 주목도가 높은 플랫폼이라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쌓이는 정보를 분석하고 적절한 대안을 개별 고객에게 제시하는 작업은 앞으로 어떤 산업이든 갖춰야 하는 기본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비상장사인 잡코리아의 실적은 2015년부터 개선세로 접어들었고 소프트플레이코리아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밖에 3호 펀드는 일동제약 지분 20%를 확보했는데 2015년 당시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상대로 진행하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해 ‘백기사’로 참여한 것이다. 마침 제약과 바이오산업에 관심이 컸던 H&Q로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2016년 일동제약은 일동홀딩스와 일동제약으로 분할 및 재상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