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소드’에서‘끝내 박수 받는 배우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바로 ‘윤승아’란 답이 나올 듯 하다.
‘로맨스가 필요해’‘유부녀의 탄생’ 등의 작품을 통해 사랑스러운 스타일을 선보이며 여성들의 워너비로 자리매김한 배우 윤승아가 진짜 배우로 돌아왔다. 오랜 연인을 향한 자기만의 인내와 포용력을 보여준 ‘희원’이란 캐릭터는 윤승아로 인해 빛날 수 있었다.
2일 개봉한 영화 ‘메소드’는 메소드 배우 재하(박성웅)의 연기를 향한 진심과 아이돌 스타 영우(오승훈)의 완벽을 향한 열정이 만나 만들어내는 강렬한 스캔들을 담고 있다.
윤승아는 사랑하는 연인 재하가 또 한번 캐릭터의 삶에 빠져든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영우에게 빠져버린 것인지에 대한 의심과 함께 감정의 진실을 파헤치는 불안한 여자 ‘희원’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최근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진행된 영화 ‘메소드’(감독 방은진, 제작 모베터필름)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윤승아는 “윤승아가 아닌 (캐릭터)희원이란 이름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해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메소드’를 만났을 때 기존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여전히 그 마음은 그대로이다.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면 좋지만, 한 명의 관객분이라도 제가 보인 캐릭터에 공감하시면 되게 좋고 행복할 것 같다. 캐릭터 이름을 들으면 되게 기분이 좋아요.”
윤승아와 ‘메소드’의 만남은 방은진 감독과의 대화로 시작됐다. 희원과 윤승아 사이에는 닮은 점이 많았다. 실제 대학에서 미술(섬유 공예)을 전공한 점, 영화의 주요 촬영지였던 광주가 그의 고향이었던 점. 희원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고 첫 촬영 이후부터 잠을 이루기 힘들었던 윤승아는 초등학교 이후 쓰지 않았던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 만큼 새롭게 다가오는 감정을 하나 하나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재능 있는 화가 희원으로 등장하는 윤승아는 재하와 영우가 역할에 몰입해가며 가까워질수록 위태로운 기류를 느끼게 된다. 새로운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그 역할에 빠져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재하를 누구보다 이해하며 묵묵히 응원하는 희원이지만, 영우와의 스캔들은 희원에게 또 다른 충격과 상처로 다가오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켜봐야만 하는 한 여인.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 희원이 있기에 재하의 인생은 보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분명한 건 희원은 재하를 굉장히 많이 사랑한다는 점.
“어떻게 보면 희원이는 참 안쓰럽고 처절한 캐릭터이다. 그럼에도 재하가 다시 돌아올거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재하를 받아줄 사람은 희원이 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윤승아의 연기가 빛나는 장면을 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침대신, 극장신, 바닷가신을 꼽을 수 있다. 윤승아의 텅빈 등, 진실을 확인한 뒤 부정하며 뛰쳐나오고 싶지만 마음과는 달리 묵직하게 열리는 극장 문, 강한 척 하지만 결국 파도에 떠밀려 휘청거리는 여인의 다리는 그 어떤 대사보다 더 많은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극장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 무거운 극장의 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던 날이다. 시나리오로 접할 때보다 크게 감정이 와 닿았던 장면이다. 그날부터 재하와 영우가 연기를 할 때는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 정말 보면 안 될 것 같고 질투가 나더라. 바닷가 장면은 희원을 더 처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감정을 꾹꾹 누른 채 중심을 잡으려 하는 희원이 무너지는 장면이다. 희원에겐 그 곳이 신성한 곳이자 둘만의 의미 있는 곳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 같다.”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희원’이란 캐릭터를 통해 ‘메소드’ 연기에 빠진 배우 가족의 풍경도 은연 중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 실제로 윤승아는 배우 부부로 김무열의 연기를 늘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단 윤승아는 남편이 캐릭터에 몰입하는 모습에 질투하기 보단 ‘배우로 더 바라보게 된다’는 답을 들려줬다.
“남편의 연기를 저는 관객의 입장에서 많이 보게 된다. 제가 처음 봤던 모습도 공연장에서 모습이라서 아직 환상이 있다. (배우 아내의 이야기가)현실에 맞닿아 있다기 보다는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면 배우로 보게 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질투를 하진 않는다. ”
윤승아는 남편 김무열과 비슷한 시기에 영화 작품을 들고 나온 점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김무열은 영화 ‘기억의 밤’으로 곧 관객과 만날 예정인 것.
“뭔가 행복한 것 같다.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다는 게 좋다. 그 점이 서로에게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실제로 ‘메소드’를 찍을 때는 제가 오랜만에 하는 작품이라 조언을 얻었다. 제가 메소드를 보고 A라고 해석을 했다면, 저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한 선배로서 B 혹은 C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걸 희원이란 인물 안에 담으려고 노력을 했다. 배우 김무열씨의 도움이 컸다.”
‘메소드’ 때문에 행복했지만, 희원 때문에 울고 아팠다는 윤승아. 이때마다 방은진 감독의 공감이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분장실에서 계속 울려퍼진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노래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뭉클 할 정도이다. 18일간의 짧은 촬영은 그렇게 특별한 한바탕 꿈처럼 기억에 남아있었다.
“말도 안되는 게 이동할 때 빼곤 회식을 너무 많이 했던 촬영장이었다. 나이트 신이 많아 아침에 끝나는 날이 많았는데, 선배님이 기다리고 계시면 회식하는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 시간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방은진 감독님과 오랜 시간 대화하면서 감독님과 제가 닮아있다는 걸 느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묘하게 끌렸다. ‘살인의뢰’(감독 손용호)에서 만난 이후 다시 이번 작품으로 만난 박성웅 선배의 아재개그도 현장을 너무 즐겁게 만들어줬다. 분장할 때 듣는 노래 ‘챠우챠우’와 함께 그 공기에 익숙해져있었는데, 마지막 촬영이라는 말을 듣고는 서로 부둥켜 안고 막 울었다.”
2014년, 한승훈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품 ’이쁜 것들이 되어라‘에 출연한 이후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된 윤승아. 2015년 초단편영화제 참가작 ’세이버‘(감독 곽새미, 박용재)는 영화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찾게 해줬다고 한다. 이번 ‘메소드’는 인생작으로 남았다. 배우로서의 갈증이 컸던 그에게 그의 목소리를 내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내 인생에서 ’메소드‘가 제 인생작이 될 것 같다. 진짜 목소리를 찾아준 작품이 ‘메소드’이고 바로 방은진 감독님이다. 그동안의 보여드렸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게 됐는데 저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을 것 같다는 욕심도 있다. 물론 알아주시면 더 좋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경험했다. ‘메소드’란 작품 자체를 통해서 되게 많이 리프레시 됐다. 어떤 작품을 하든지 배우로서 한 번씩 부딪치겠지만, 좋은 작품을 함께했던 스태프와 배우들의 열정과 행복한 기운을 늘 기억하고 싶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