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 100년째를 하루 앞둔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 1층 마당에서 동상 기증식이 진행됐다.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은 4.2m 높이의 박 전 대통령 동상을 기증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증서를 기념·도서관 측에 전했다.
기념·도서관 측은 이날 동상 제막식을 열 계획이었지만 서울시의 심의 절차를 밟지 않아 기증식만 연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도서관은 서울시가 무상 제공한 ‘시유지’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동상을 세우려면 서울시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ㅏㅇ황.
대신 동상 사진이 그려진 현수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이 오른손에는 ‘민족중흥’이 적힌 책을 들고, 왼손으로는 멀리 허공을 가리키는 모습.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김영원 전 홍익대 미대 조소과 교수가 제작한 가운데 이날 기증식에는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조우석 KBS 이사, 박근 전 유엔 대사, 김영원 전 교수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념·도서관을 운영하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좌승희 이사장은 “이승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포함해 대통령 기념관에는 주인공 동상이 있어야 제대로 된 나라다”라며 “진영 논리에 따라 동상 설치를 반대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은 선진 시민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날 동상 설립에 찬성하는 시민들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기증식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반면 기념·도서관 앞 인도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와 ‘박정희 동상 설치 저지 마포비상행동’ 등이 동상 설치 반대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박정희 동상 반대한다’, ‘차라리 황국 군인 동상을 세워라’ 등의 팻말을 들었다. “시민의 땅에 친일독재자 동상 어림없다”는 구호도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마포비상행동 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 군인이자 임시정부의 반대편에서 교전을 수행한 명백한 적국 장교”라며 “청산의 대상이지 절대 기념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이어 “동상 설치를 강행한다면 기필코 저지할 것”이라며 “서울시는 적법 절차를 통해 동상 설치를 불허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도서관 진입 계단을 사이에 두고 동상 찬성 측과 반대 측 사이에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의경 1개 중대 80여명을 동원해 계단 중간을 두 겹으로 막는 등 ‘폴리스 라인’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스 라인 위쪽에 있던 기증식 참석자들은 “빨갱이, 북한으로나 가라”고 소리쳤다. 아래에 있던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친일파들, 너희나 일본으로 가라”고 맞받았다.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한 남성이 “여기가 어디라고 조선땅에 친일파 동상을 건립하려 하나”고 외치자 빨간색 베레모와 군복을 입은 기증식 참석자들이 욕설을 하며 달려들다 경찰에 의해 제지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서로 멱살을 잡고 밀친 혐의(폭행)로 동상 설립에 찬성하는 40대와 반대 집회 참가자 50대 등 2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경찰서로 옮겼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을 입건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서로 합의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조만간 동상을 심의할 공공미술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념·도서관 측으로부터 박정희 동상 설립 신청이 들어오면 절차를 밟아 처리하겠다고 의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