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중국해 중재자’ 역할을 타진했지만 정작 동남아시아 국가 정상들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미국 역시 북핵 공조를 위해 남중국해까지 전선을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13일 마이니치신문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전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관련 비즈니스 포럼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연설했다고 보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협력만이 길”이라던 시 주석의 주장에 동조했다.
베트남도 미국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전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권력서열 2위인 쩐 다이 꽝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내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중재할 수 있다면 알려달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국제법에 따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이라는 원론적인 반응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기까지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 의지해왔던 동남아 국가들이 최근 중국의 경제력에 의존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경제 성장을 위해 중국에서의 투자를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로 중국은 총 수입액의 28.7%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국이다. 공통적으로 사회주의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하고 있어 중국과 유사성이 있기도 하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이어서 수행하는 등 지역 패권을 염두에 둔 듯한 모습이지만 당장 북한 관리가 우선순위인 상황에서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전까지는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 남중국해 관리에 나섰지만 북한이 미국령 괌 타격을 위협하는 등 핵·미사일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갈등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